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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투데이

오바마와 사르코지의 동상이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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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특히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오바마의 당선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앞당겨 받은 것과도 같다. 우파인 사르코지와 진보 성향의 오바마는 정치적 기반이 다르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지지 기반이 다른 정상들 간에도 협력은 충분히 가능했다. 우파였던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과 좌파였던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는 가까운 동맹이었고, 개인적으로도 친구였다. 우파 독일 총리 헬무트 콜과 좌파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 역시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사르코지가 오바마의 당선을 반길 이유는 분명히 있다. 오바마 덕분에 자신의 대외정책에 반발하는 국민과의 충돌을 피할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르코지는 전임자인 자크 시라크와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해 미국과 우호관계 복원을 외교의 우선순위에 뒀다. 프랑스가 직면한 위협에 맞서려면 이라크전 이래 극도로 나빠진 미국과의 관계를 되살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여론은 달랐다.

프랑스인들은 미국이 불안을 안겨주는 근원이라고 믿으며, 미국에 관한 한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반미주의와 혼동하면 안 된다. 오히려 샤를 드골 대통령 시절 이래 면면히 이어져온 프랑스의 ‘국익수호 우선’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미국에 굽히려 하지 않는 프랑스인의 전통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8년 동안 더 강해졌다.

하지만 사르코지는 워싱턴에 대한 충성심과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욕망 때문에 1967년 드골 대통령이 탈퇴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군사 조직에 재가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재가입 단행 시점은 나토 창립 60주년을 맞게 되는 내년 4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가입 선언은 드골주의자들의 반발을 초래했고, 좌파 정당들에 반정부 시위를 벌일 빌미를 안겨주었다. 실제로 좌파 정당들은 강력한 반정부 여론을 등에 업고 사르코지를 신나게 공격했다.

만일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가 미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나토의 군사 조직 재가입에 시큰둥했던 프랑스인들은 사르코지의 재가입 선언에 격하게 반발했을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매케인이 집권하면 부시와 마찬가지로 세계 어딘가를 공격하는 군사작전을 밀어붙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가 당선됨으로써 사르코지는 국민과 줄다리기를 벌이지 않고도 재가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또 오바마는 지구온난화와의 싸움을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선언했다. 이 또한 사르코지에겐 희소식이다. 지구온난화는 사르코지가 부시 행정부와 자신을 대립시킨 몇 안 되는 이슈이며, 프랑스인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사르코지에게 골칫거리도 안겨줄 것이다.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서방 국가들의 단합된 군사력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집권하면 당연히 유럽 동맹국들에 고통분담(파병)을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프랑스는 2002년부터 아프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이라크와 달리 아프간 파병은 법적 정통성이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상황은 갈수록 절망적이 돼가고 있다. 특히 프랑스군은 최근 여러 명의 전사자를 냈다. 프랑스인은 자신들의 군대가 평화유지 작전이 아니라 전쟁을 벌이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오바마가 프랑스의 추가 파병을 원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오바마가 프랑스 국민을 설득해 그런 꿈을 실현시키기란 정말 힘들 것이다.

파스칼 보니파스 프랑스 국제관계전략문제연구소장
정리=강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