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인수 새주인도 부실우려-한보 3자인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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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자 인수는 정부가 지금까지 부실기업 정리때 가장 많이 활용해온 방법이다. 경제에 충격을 덜주고 가장 신속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신속성의 뒤에는 항상 특혜시비가 따르게 마련이다. 80년 중반 전두환(全斗煥)정권때 이뤄진 무더기 부실기업 정리가 정권이 바뀌면서 뒤탈이 났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번 한보철강의 처리문제도 마찬가지 이유로 초장부터 3자인수 처리라는 기존 방침에 시비가 걸리고 있는 것이다.우선 3자 인수의 필요성을 따져보자. 한보가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될 경우 예상되는 국민경제에 대한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당장 2만여명에 이르는 종업원에다 한보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공사,그리고 철강산업을 비롯한 각종 산업에 미치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절대로 기업이 죽어서는 곤란하다'는 설명이다. 정부가.주인은 바꾸되 회사는 살려야 한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하지만 제3자 인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한보가 완공후 정상 가동될 수 있으며,설사 가동된다하더라도 수익이 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과거의 숱한 예에서 보듯 부실 덩어리인 한보를 잘못 인수했다가 자칫하면.새 주인'도 함께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문제는.특혜시비'.한보(자산 4조5천억원)같이 덩치가큰 기업을 인수,제대로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곳은 적어도 포항제철을 비롯해 삼성.현대.대우.LG등과 같은 대그룹들뿐이다. 물론 아직은 아무도 인수 의사를 보이지도 않지만 막상 인수하겠다고 나서도 문제다.5조원의 빚더미를 안고 있는 이 기업을 인수,정상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적잖은 은행의 추가지원,세금감면등의 추가지원이 필수적인데 이 경우 국민감정상.특 혜시비'가 불거져 나올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부실회생 능력이 있는 기업들에 넘기자니 특혜시비가 따를테고 특혜시비를 피하자니 인수능력이 있는 마땅한 기업을 찾기가쉽지 않은 것이다. 청와대 일각에서“한보를 국민기업화하겠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특혜시비의 가능성을 염려해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설사 한보제철소가 정상가동에 들어간다 치더라도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잖을 전망이다. 설사 3자 인수가 이뤄진다 해도 문제는 있다.지금까지 산업합리화 지정에 이은 3자 인수의 뒤끝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5공시절 5차에 걸친 부실기업 정리 조치에 따라86~88년 3년간 국제그룹등 83개 업체가 합리화 대상으로 지정됐지만,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38개가 부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중 21개는 아직도 적자라는게 은행감독원의 설명이다.최근의3자 인수방식에도 적잖은 문제가 발견되고 있다. 인수 과정에.경제 외적'요인이 작용하다 보니.문제 있는 기업'이 덩치 큰 기업을 인수,결국 같이 망한 예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95년 6월 한보에 인수된 유원의 경우 이미 엄청난 빚을 안고 있는 한보에 넘어가는 바람에 두번 망하는 꼴이 됐다.94년말 한보그룹의 부채비율은 4백98.8%,유원은 2천1백.7%였다.결국 두 기업을 함께 떠안게된 제일은행으로서는 작은 부실을털려다 더 큰 부실의 덫에 걸린 셈이다. 한일그룹에 인수된 우성도 마찬가지다.은행쪽에 유리한 선인수.후정산 원칙으로 덜컥 한일을 인수자로 결정했지만 자산.부채에 대한 정산에 합의하지 못해 7개월이 넘도록 여태까지 질질 끌어오고 있는 판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정부가 급한 김에 일단 한보철강에 대해3자인수 처리원칙을 밝히긴 했지만 결론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김왕기.유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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