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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 삼촌의 꽃따라기] 내 사랑은 남쪽 바다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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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어째 가까운 제부도보다 먼 제주도에 자주 드나드는 것 같다. 제주도에선 11월이 다 간 이즈음에도 심심찮게 꽃을 볼 수 있다.

제주도에 와 이틀 동안은 오전 7시 일어나 정말 발목 아프게, 부지런히, 땀나게 돌아다녔다. 자생하는 연화바위솔을 찍으러 갔다가 된장풀을 발견하기도 하고, 소원하던 덩굴용담의 탐스러운 열매를 만나 내년을 기약하기도 하고, 영실에서 윗세오름까지 추위를 뚫고 오르기도 했다.

제주도를 떠나던 날도 아침 일찍 쇠소깍의 검은 모래 해변으로 나갔다. 전날 보아둔 덩굴모밀을 빛좋은 시간에 마주하고 싶어서였다.

무리지어 자라는 덩굴모밀은 제주도에서도 남쪽에서만 자란단다. 잎은 어린 고마리의 잎처럼 생겼다. 메밀의 옛말인 ‘모밀’이 이름에 들어갔으니 국수를 해서 먹을 수도 있을까? 열매는 약간 단맛이 돈다. 그것이 나의 아침. 파도에 금세 지워질 발자국 몇을 남기고 해변을 떠났다.

들를 곳이 많다. 내 발품보다 애마의 발품을 더 팔아야 하는 날이다. 얼핏 헤아려 보니 10개월 동안 10만km를 넘게 달렸다. 나만의 ‘비밀 숲’을 지나 가본 곳에서 붉은 보석 천지를 만났다.

겨울 딸기가 분명했다. 새콤한 게 줄딸기 맛과 비슷했다. 그것이 나의 점심.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었던 녀석은 역시 새비나무였다. 보라색 열매는 약간 아리기는 해도 끝에 단맛이 돈다. 그것이 나의 간식.

5시 배를 타기 위해 제주항 제2 부두를 향해 달렸다. 빗방울 몇 개가 앞 유리창을 때렸다. MBC라디오 ‘두 시 만세’에서 가수 이남이가 나와 인생철학을 늘어놓았다. 당시의 경험과 심정을 담아 썼다는 ‘울고 싶어라’가 마음을 적셨다.

그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를 보며 정말 울고 싶어서 그러시나 하고 유심히 살피던 어릴 때 기억이 생각났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시인 윤동주의 ‘새로운 길’을 떠올렸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올해만 해도 나의 길에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았다. 아가씨가 지나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일었고 숲으로 마을로 돌아다녔다. 연재하는 글 덕에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 되어주었다. ‘꽃따라기’와 함께 해주신 독자들께 감사 드린다. <끝>

글·사진 이동혁 http://blog.naver.com/freeb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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