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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간송미술관을 볼 순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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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핀잔을 들을 수 있겠다. 간송미술관의 ‘보화각 설립 70주년 기념전’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지난달 12일부터 2주간만 열렸다. 간송미술관의 ‘보물창고’는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번만 잠깐 문을 연다. 그렇다.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다. 위에서 말한 미술관은 현실에 없다. 상상 속의 간송미술관일 뿐이다. 그곳을 다녀온 뒤 한 달이 지나도록 떨쳐지지 않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었다.

10월에 찾았던 그곳은 평일인데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2주간 20만 명이 다녀갔다니 그럴 만도 했다. 좁디좁은 공간에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반걸음씩 진도를 나가며 작품을 보아야 했다. 자칫 그 대열에 제대로 끼지 못하면 ‘철벽’ 같은 다른 이들의 어깨와 등을 바라보고 멍하니 서 있기 십상이다. 솔직히 이번 전시에서 작품보다 더 많이 본 것은 다른 관람객의 어깨였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 열풍이라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2004년 ‘대(大)겸재전’을 보기 위해 그곳을 찾았을 때도 비슷했다. 이른 더위에 에어컨도 없는 전시실은 푹푹 찌는 사우나실을 방불케 했다.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은 이 정도 ‘고문’을 치러야 한다. 단칸 화장실도, 홈페이지가 없는 당황스러움도 이곳만의‘개성’과 ‘고집’으로 이해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도 받지 않고, 기업의 후원도 거부하고, 국보급 문화재를 ‘공짜’로 보여주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그 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면서 일 년에 딱 두 차례만 공개하는 것이 최선일까. 지방에 사는 사람도, 초·중·고생도, 고미술에 문외한인 이들도 친절한 작품 설명을 들으며 감상하면 안 될까. 70년 전 지어진 시설이 열악하다면 다른 미술관과 연계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보여줄 순 없을까….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데 일생을 건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의 스토리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이 미술관을 40년간 지켜온 최완수 실장의 옹골찬 연구 열정도 존경스럽다.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박물관에 대한 그의 논리다.

최 실장은 많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소장품을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면 어떠냐”는 질문에 같은 대답을 반복해 왔다. “박물관의 기능은 세 가지다. 첫째는 수집·보존, 둘째는 연구, 셋째는 전시다. 우리는 보존과 연구에 힘쓴다.” “전시도 중요하지만 학술적 연구가 핵심”이라고도 했다. 전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뭘 몰라서 하는 소리란다.

그렇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간송이 안간힘을 쓰고 문화재를 모은 것은 미술사학자들의 ‘연구’를 위해서였을까. 후손과 함께 ‘감상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단원과 혜원이 그림을 그린 것도 보여지기보다는 ‘연구’되기 위해서였다는 얘기인가. 보존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보존과 연구를 위해서는 소장품을 꽁꽁 감춰둬야만 하는 것일까?

간송 연구원들이 펴내는 『간송문화』에는 간송의 인간미를 묘사한 대목이 나온다. “소탈한 성격은 모든 사람을 포용하여 그 큰 날개로 감싸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간송미술관은 그의 ‘포용’정신까지는 잇지 못한 듯하다.

이은주 스포츠문화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