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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권영길式 '투자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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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19일 낯선 외국인들이 민주노동당사를 찾았다. 이들은 민노당의 원내 진입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주한 미상공회의소(AMCHAM.암참) 회장단이었다.

그러나 이들과 민노당 당직자들 사이에는 한때 어색한 대화가 오갔다.

태미 오버비 암참 수석부회장은 덕담 삼아 "올해 최대의 외국인 투자는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에 26억달러를 투자한 것"이라고 말하자, 민노당의 권영길 대표는 "지금까지의 외국인 투자는 우량기업 인수나 증권 투자 등 단기차익을 노린 경우가 많았다"고 맞받았다.

오버비 부회장은 "외국인 투자기업의 자본과 일자리는 모두 국내에 남아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씨티그룹도 지난 25년 동안 한국에 돈과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權대표는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에는 반대한다"며 "앞으로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은 곳에 (외국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윌리엄 오벌린 암참 회장은 이날 방문의 목적을 "시위나 파업 등으로 외국에 나쁘게 알려진 한국의 이미지를 바로잡아 한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데 민노당과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꺼리는 노사 불안을 없애나가자는 이야기를 나누자는 뜻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투자는 되고, 저런 투자는 안 된다'는 식의 일방적인 '외국인 투자론'을 경청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투자는 투자하는 사람이 원하는 곳에 하는 법이다. 투자를 받는 쪽에서 요구한다고 돈이 찾아오는 게 아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고임금으로 우리나라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가뜩이나 매력이 없는 곳이 돼가는 판에 제조업처럼 일자리가 늘어나는 업종에만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민노당이 진정 일자리 늘리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외국인들이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쪽에 투자할지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홍병기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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