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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임대 9000가구 '자격 미달' 쫓겨날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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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득이 갑자기 불어난 것도 아닌데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에서 제외됐다는 이유만으로 10년 동안 지내온 보금자리에서 쫓겨날 판이에요."

1994년부터 서울 노원구의 11평짜리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살아온 강모(71.여)씨는 내년 초까지 집을 비워줘야 한다. 서울시가 영구 임대주택 관련 규칙을 개정하면서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가 아닌 영세민을 강제 퇴거시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2년 전 딸(35)이 직장을 얻게 되자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에서 빠졌다. 그의 전 재산은 임대보증금 154만원. 별거 중인 딸이 보내주는 용돈으로 월 관리비와 임대료 13만원을 간신히 대고 있다. 딸이 직장을 갖고 있는 한 강씨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에서 제외돼 길거리로 쫓겨날 처지다.

강씨와 같은 처지에 놓은 영세민들은 서울에서만 9000여가구에 달한다. SH공사(옛 서울시도시개발공사)가 공급한 2만2370가구의 영구 임대아파트 입주자 중 40%에 해당된다.

이들은 스스로 약간의 돈을 벌고 있거나, 자식들의 성장 또는 취업 등으로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 조건을 벗어나 있지만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도시 빈곤층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이 아닌 영구 임대주택 거주자들에게는 2년마다 재계약을 하면서 임대료.보증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자진 퇴거를 유도해 왔다. 그러나 몇백만원에 불과한 보증금이 올라봐야 새 집을 구하기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입주자들은 별다른 대책 없이 지내왔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 3월 현재 임대주택 입주 대기자는 2만1000여가구. 서울시 측은 입주 조건을 상실한 영세민의 기득권을 계속 보장해 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주택관리팀 박효주 사무관은 "입주 대기자들의 민원 등 이해관계가 부닥치는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다음달 중 퇴거 방침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공공영구임대주택연합은 다음달 12일부터 임대아파트들을 돌며 궐기대회를 열고 서울시 측의 방침 철회를 요구하기로 했다.

◇영구 임대주택 현황=SH공사의 2만3000여가구와 주택공사의 2만5000여가구 등 서울에 총 5만여가구가 영구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주택공사가 공급한 영구 임대아파트는 서울시의 방침과 달리 계속 입주를 보장하고 있다.

배노필.이경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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