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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부도처리 이후가 문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보사태를 둘러싼 정부와 채권은행단의 자세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너무 많다.양파껍질이 벗겨지듯 하나씩 드러나는투자계획의 무모함과 비합리성은 차치하고,상상할 수 없는 자금을지원한 채권은행단은 이제까지 뭘하고 있다가 부 도처리를 하겠다고 법석을 떠는지 모를 일이다.관련은행의 주주들에게 무엇이라 변명할 것인가.
은행측이“우리가 대출하고 싶어 한 것이 아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소문대로 외부압력을 받았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금융개혁을 하겠다는데 바로 이것이야말로 개혁의 대상이 아닐 수없다.반년이란 짧은 기간에 부채가 60%나 늘어 나 자기자본의19배나 되도록 금융기관이 지원한 배경은 무엇인가.
한보측과 은행은 잦은 설계변경과 기술적인 문제로 당초 계획보다 투자비용이 더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공장을 짓는 과정에 세계 철강경기가 하락한 것이 어려움을 가중시켰는데 이 또한 기업이 대비했어야 할 일이었다.막대한 돈을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퍼붓고도 제대로 된 품질이 안나온다는 딱한 현실을 누군가는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은행경영이 자율화돼 있고 주식시장이 가동된다면 거액 부실여신이 될 공산이 큰 이번 사태에 대해 줄줄이 책임지는 인사가 나와야 할것이다. 더 늦기전에 부도처리를 하고 법정관리를 하든지 제3자에게 인수를 하든지 방향을 정한 것은 나중에 피해가 눈덩이처럼불어날 것을 예상하면 다행한 일이다.이제부터 남은 과제는 경제원리에 맞게 단계별로 다음과 같은 기준에서 처리하는 것 이다.
첫째로 완공된 후에도 한보철강의 사업성이 있느냐를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두번째는 공기업형태는 안된다는 것이다.나중에 문제를더 크게 만들 뿐만 아니라 경영정상화를 기대하기에 불가능한 방법이다.셋째는 제3자인수를 당장 시작하라는 것이다.인수희망기업에 대해선 경영정상화를 위해 합리화하게끔 여지를 줘야 한다.추가자금지원의 정당성은 사업성의 판단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시나리오는 자율경영체제가 확립되지 못한은행단이 주인없는 상태로 한보의 경영에 물려 돈은 돈대로 계속집어넣고 기업수지는 악화되는 일이다.금융개혁의 추진은 한보사태에서부터 시범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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