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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이름은 멋지다, 프리터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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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을 앞둔 이영욱(26)씨. 그는 정규직을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이른바 프리터(freeter=free + arbeiter)족이다. 파티 플래너와 액세서리 제조.판매가 주된 일.

그러나 가장 쏠쏠한 수입원은 머리카락을 몇개씩 묶어 일일이 꼬는 레게머리 땋기다. 외국에 자주 나가 흑인 친구들을 사귀면서 어깨 너머로 배웠다. 5년 전 이 일을 시작해 이젠 제법 베테랑 축에 낀다.

▶ 놀이공원 청소 아르바이트가 그냥 인라인스케이트만 신고 폼내는 게 아니다. 잽싸게 쓰레기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는 휙 돌며 다리 사이로 비질을 하는 등 재주를 부리는 일종의 ‘공연단’이다. 직업 의식을 갖고 놀이공원이 마련한 수련 과정을 거쳐야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모델은 롯데월드 아르바이트생 박수정씨(22). 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한번 작업하는 데 드는 시간은 4시간 정도. 보통 60만원이 넘는 미용실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20만~30만원을 받는다. 인터넷에 올린 광고를 보고 한달 평균 10건 이상의 주문이 들어온다.

가발 등 재료비를 빼면 머리땋기 알바만으로도 한달 수입은 150만원에 이른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저를 몹시 부러워해요. 수입은 비슷할지 몰라도 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요. 누구 밑에 들어가 일할 팔자는 아닌가 봐요." 자기만의 영역을 뚜렷이 갖췄기 때문인지 이씨는 당당하고 여유로웠다.

올 2월에 대학을 졸업한 조미연(25.여)씨 역시 프리터족에 속한다. 대학 시절까지 합쳐 그녀가 일한 아르바이트는 20여가지가 넘는다. 선거철엔 출구조사, 신제품 출시 좌담회나 TV 모니터 요원 아르바이트. 일본어에 능통해 한국인들의 일본 여행 도우미도 해봤다. 목돈이 필요할 땐 열흘 정도 대형 식품점 시식 도우미로 일하고 80만원가량을 번다. 그녀는 올 가을 유럽 배낭 여행을 할 예정이다.

"이렇게 악착같이 벌어들인 돈으로 두달가량 해외를 돌고 오면 식견도 넓어지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도 잡힐 것 같아요."

지금은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머릿속은 복잡하다. 그녀는 원래 광고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했다.

"대학 때 인턴으로 광고 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이상과 달리 너무 힘들고 월급도 많지 않고….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겨 포기했죠. 아르바이트만 전전하긴 어렵겠지만 꽉 매이는 직장 생활을 꼭 해야할지 고민스러워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반 가량 수출 박람회 통역과 대기업 사무 보조 등 아르바이트로만 지내온 김미경(25.여.가명)씨는 좀 더 솔직하다.

"직장 다니는 친구들은 자유롭고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얼마나 좋으냐고 부러워하지만 모르는 얘기죠. 제 비슷한 나이 또래의 정규 직원들한테 '야 알바 이리 좀 와봐'란 소리 들을 때면 얼마나 서러운지…. 이렇게 부나비처럼 떠돌지 않고 명함 찍어 번듯한 직장 다닌다고 주위 어른들한테 인정 받고 싶어요. 아마 장담컨대 얽매이기 싫다며 직장을 구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아르바이트만 계속하는 젊은이들은 5%도 안될 걸요."

최민우.이경희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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