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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로산다>11년만에 '애플'로 돌아온 잡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불사조(不死鳥)'.경영을 모르는 컴퓨터 천재'.위험한 몽상가'-. 지난 76년 약관의 나이에 집안 차고(車庫)에서.애플Ⅰ'을 개발,개인용 컴퓨터시대를 연 미 애플컴퓨터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42)를 일컫는 말이다.그가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쫓겨난지 11년만에 애플 회생의 중책을 맡고 되돌아왔다 .
지난 80년대초까지 공동창업자 스티븐 워즈니악과 애플을 일약세계 초일류 컴퓨터업체로 성장시켰던 잡스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만큼이나 극적인 좌절을 겪었다.
5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양부모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공상을 좋아했던 그는 72년 포클랜드시 리드대학에 입학하지만 2년만에 그만두고 당시 유행했던 히피에 물들어 2년간 인도에서 방랑생활을 했다.그의 운명이 뒤바뀐 것은 74년 컴퓨터매니어들의 모임인.홈브루 클럽'에서 스티븐 워즈니악을 만나면서부터.두 젊은이는 76년 25달러짜리 마이크로프로세서 한개를 구입해 만든 애플Ⅰ을 컴퓨터 상점 사장이 6백66달러에 사 진열해준 것을 계기로 사업의 길에 나서게 된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77년 애플을 창업하고 컴퓨터 그래픽.메모리.사운드카드를 내장한 혁신적인 애플Ⅱ를 개발,일약 컴퓨터업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80년에는 1억1천7백90만달러의 경이적인 매출을 기록,미 PC시장의 32%를 차지하며 1위업체로 급부상했다.꿈을 먹고사는 잡스의 정면돌파형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 하지만 81년 IBM이 IBM PC를 들고 나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잡스는.IBM을 진심으로 환영한다(Welcome,IBM seriously)'라는 도전적인 전면광고로 맞대응했지만 IBM 16비트 프로세서의 빠른 계산속도와 메모 리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결국 83년에는 애플의 시장점유율이 21%(IBM 30%)로 급락했고 최대 위기를 맞게됐다.잡스는 이후 자신의 딸 이름을 딴 그래픽환경의 컴퓨터 리사(LISA)를내놓았지만 1만달러의 고가에 소비자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IBM PC가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자 경쟁사들이 호환기종을 내놓는 사이 잡스는 독불장군식으로 이상형 컴퓨터만 고집했다.전문경영인이 필요하다고 판단,83년 5월 펩시콜라사장 존 스컬리를 영입해 이듬해부터 사무용 PC 매킨토시로 대반 격에 나섰지만 조작만 간편해졌을뿐 메모리 용량이 부족하고 고성능 프린터가없어 참패당한다.잡스는“컴퓨터가 상업화하는 것은 자신의 철학에반한다”는 경영과 동떨어진 신념으로 일관,결국 85년 자신이 고용한 사장에게 쫓겨나는 수모를 겪 었다.
그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소비자가 원치 않더라도 자신의 이상대로 컴퓨터를 만든다”는 고집으로 바로넥스트사를 설립,넥스트 컴퓨터라는 미래형 컴퓨터를 개발했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또 실패했다.
그러나 잡스는 자신이 경영하는 애니메이션 전문업체 픽사가 10년간 공들여 만든 컴퓨터 제작영화.토이 스토리'가 95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그는 이어 넥스트를 소프트웨어 전문회사로 전환,객체지향형 컴퓨터 운영체제(OS) 넥스트스텝을 개발해 변신에 나섰다.애플의 질 아멜리오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95와 대항할 유일한 OS로 넥스트스텝을 지목,결국 애플을 가장 잘아는 잡스를 영입한 것.인텔.모토로라.스파크칩등에서 모두 작동하는 넥스트스텝은 애플의 차기 OS.랩소디'의 핵심기술로 채택돼 윈도95와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 미리 만들어 놓은 블록으로 성(城)을 쌓듯 모든 응용프로그램에서 새 소프트웨어를 작동할 수 있다는 넥스트스텝이 애플의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인가.옛 영광 재현을 위해 야전사령관을 자처하며 동갑내기 빌 게이츠와의 한판 승부에나선 잡스의 움직임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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