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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利 1500% 급전까지, 5% 저신용층의 비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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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04면

서울 북창동 뒷골목 전신주에 붙어 있는 대부업체 광고 스티커. 등록번호와 전화번호를 서울시 등 해당 시·도에 확인해야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신고센터에서 일일 상담원이 된 최준호 기자.

19일 서울 소공동 한국YMCA연맹 건물 2층 대부업피해신고센터. 오전 9시30분, 취재기자가 상담센터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린다. “대부업피해신고센터입니다”라며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젊은 남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서울 북가좌동에 사는 대학생 이모(22)씨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대부피해신고센터 일일 상담원 돼보니

“지난달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돈을 구할 곳은 없고 해서 고민하던 중이었어요. 생활정보지에 실린 대출광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24시 출장 가능. 50만~150만 당일지급. 신용불량자·연체자도 가능….’ 아래쪽에 적혀 있던 휴대전화 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150만원을 빌리겠다고 했더니, 열흘 대출에 100만원당 30만원의 이자를 요구했습니다. 대출 연장을 하려면 그만큼 더 이자를 내야 했습니다. 빌리겠다고 하니 그쪽에서 바로 선이자 45만원을 제외한 105만원을 통장으로 넣어주더라고요. 그동안 이자만 세 차례 총 135만원을 냈어요. 급한 마음에 돈을 빌리긴 했지만 이자가 너무 높아요. 최근에 이자를 못 냈더니 대부업체 사람이 전화를 해서 윽박지르고 협박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감당이 안 됩니다. 도와주세요.”

이씨가 빌린 돈은 ‘급전’으로 불리는 사금융이다. 이자율을 계산해 보니 연간 1500%가 넘는다. 법정이자 상한선(49%)의 30배 수준이다.

이어 전화를 한 회사원 박모(27·여·경기 안양시)씨는 대출사기의 희생자였다. 박씨 역시 생활정보지에 실린 휴대전화 번호를 보고 대부업체에 연락을 취했다. 당장 이사를 해야 하는 형편인데 전세금 1500만원이 모자랐다.

“500만원당 25만원의 ‘수수료’를 먼저 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급한 마음에 75만원을 입금해 줬습니다. 그런데 대출금을 받기로 한 날 확인해보니 돈이 한 푼도 안 들어왔어요. 업체에 전화를 했더니 먼저 남자직원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의 희롱을 했습니다. 선수수료 75만원을 돌려받을 수 없나요.”

박씨는 대포폰 대출사기 희생자다. 돈을 돌려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산에 사는 주부 한모(50)씨는 동네에서 빵 가게를 하는 남동생의 사연을 호소했다.

“최근 빵 가게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동생이 연락처도 안 남기고 잠적했는데, 일수업자 6명이 동생을 찾아내라며 매일같이 찾아오고 있어요. 부모님이 살고 계신 아파트가 동생 명의로 돼 있는데 이미 모르는 사람 이름으로 가등기돼 있고, 2억원에 가까운 근저당도 설정돼 있더라고요. 동생 통장을 찾아보니 S, C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부업체로 이자가 계속 빠져나가고 있었어요. 동생의 빚이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박씨의 사연은 안타까웠지만 동생의 연락처도, 부채 상황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누나인 박씨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서민들 합법 대부업체서 외면당해
대부업피해신고센터에는 10월 이후 하루 평균 50여 건의 상담 전화가 걸려온다. 9월까지만 해도 하루 20~30건이었다. 취재기자가 하루 동안 들은 상담 내용은 연리 1000%가 넘는 살인적인 급전이나 일수·대출사기에 관한 것이었다. 대부업법에서 정한 법정이자 상한선 49%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신고센터의 이재선 사무국장은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상담사례는 선이자를 받은 뒤 돈을 빌려주지 않고 잠적해버리는 대출사기”이라며 “고금리로 한몫을 보려던 대출업자들이 대출 회수율이 떨어지자 아예 사기범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19일 “은행권 대출중개를 빙자해 10~15%의 수수료 선납을 요구하고 정작 대출중개는 해주지 않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저신용층들은 정식 대부업체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가 45개 중대형 대부업체의 3분기 이후 실적을 조사한 결과 시간이 갈수록 대출규모가 급속히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7월 1886억원이던 대출액은 8월 1627억원, 9월 1105억원, 10월 885억원으로 줄었다.

대부소비자금융협회 주희탁 과장은 “대부업체의 대출이 급감한 것은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대부업체들도 대출 재원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며 “서민들이 생계형 급전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불법 사채가 더 활개를 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부업피해신고센터에 신고된 불법 사채 고금리 피해건수는 지난 8월 47건에서 지난달 121건으로 급증했다.

사금융시장 규모 16조원
올 초 금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등록 대부업체나 불법 사채업자 등 사금융을 이용하는 사람은 총 189만 명(성인의 5.4%)에 이르며 이용 규모는 16조5000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중 불법 사채업자(무등록 대부업체)에게서 돈을 빌리는 사람은 17%(약 33만 명)가 넘는다. 등록 대부업체라고 해서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다. 국내 등록 대부업체는 총 1만8000개. 하지만 이 중 절반은 대부업체가 아닌 대출중개업자들이다. 피해신고센터에 따르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e-메일로 ‘긴급대출’ 등의 스팸광고를 보내는 사람들이 바로 대출중개업자들이다.

부경대 홍재범(경영학부) 교수는 “신용대출을 다루는 등록 대부업체들 중에서도 외부감사법인 20여 개를 제외하고는 법정 이자율 상한선을 지키는 곳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신고센터의 이재선 국장은 “총 대출규모가 2억원 미만인 영세 대부업체들은 전주(錢主)로부터 대부분 20% 이상의 이자를 물고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평균 30%에 달하는 고객 연체율까지 고려하면 법정이자 상한선인 49%를 지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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