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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프랑스혁명의 씨앗’… 커피가 역사를 바꿨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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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커피가 돌고 세계史가 돌고
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김수경 옮김
북북서, 264쪽, 1만2000원

책에 부제를 붙인다면 ‘역사를 움직이는 커피’가 적당할 듯싶다. ‘세계 2위의 무역상품’ 커피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커피라는 상품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에 관여했는지 풀어낸 책이다. 도쿄대 교수인 저자는 세계사의 주요 장면들을 커피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커피라는 음료를 만들어낸 것은 이슬람 신비주의 수도사인 수피였다. 그들은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기 위해 잠을 쫓는 커피를 마셨다.식욕을 쫓고 살이 빠지게 하는 커피의 특성도 금욕주의자인 수피들에게는 요긴했다.

아라비아에서 처음 마시기 시작한 커피가 유럽에 전파되는 데는 성지순례가 큰 역할을 했다. 이슬람 교도들의 성지순례는 그 자체가 거대한 상품수송기관이자 정보전달기관이었다. 머지않아 커피의 운반과 교환에 이슬람 세계의 거상들과 유럽제국의 상인자본가가 관여하기 시작했고, 커피는 근대 상품교환사회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등장하게 된다.

런던으로 건너간 커피는 ‘커피하우스’로 변신해 근대시민사회의 제도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커피하우스는 ‘1페니 대학’이라 불리며 런던 시민들을 공론 형성의 장으로 불러냈다. 몇몇 커피하우스는 『일리아스』『오디세이』를 번역한 알렉산더 포프와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 등 문인들의 단골이 됐다. 또 세계 최대의 선박 보험회사 로이드는 선원과 여행자를 상대로 운영되던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됐다. 당시의 커피하우스는 우체국·주식거래소·곡물거래소의 역할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한 사무공간으로서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영국의 커피 문화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1674년 당시 커피하우스 출입이 금지돼 있었던 여성들이 커피 반대 운동을 벌이면서다. 허구헌날 커피하우스에 죽치고 앉아 수다를 일삼는 남편들을 보다못한 아내들이 “섹스의 부재”를 호소하며 반대 운동을 벌인 것이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커피가 시민혁명의 씨앗이 된다. 바로 카페문화를 통해서다.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의 작전사령부로 명성을 날린 파리의 카페 프로코프 등이 그 중심이 됐다. 지식인들의 ‘카페정치’가 프랑스혁명의 모태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커피의 위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착취와 인종차별에도 깊이 개입했으며, 독일의 파시즘 탄생에도 일조한다.

책은 20세기 초 10년 동안 세계의 커피 총생산량의 4분의 3이상을 생산했던 브라질에도 눈길을 돌렸다. 유럽의 식민지 제국주의는 커피 생산지에 극단적인 ‘모노컬처 경제(한 나라의 경제가 몇 개의 1차 상품의 생산에 특화돼 있는 단작(單作) 경제)’를 강요했다. 20세기 초반 브라질은 국민 90%가 커피생산에 종사했으며, 외화수입의 90% 이상을 커피에 의존했다. 1929년 월가의 주식대폭락으로 전세계의 커피구매력이 급격히 줄어들었을 때 브라질이 받은 타격은 어마어마했다. 브라질은 결국 세계 커피소비량 전체의 2년 반치를 폐기해야 했다.

아프리카 커피 수출국들의 커피 의존도도 지나치게 높다. 커피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우간다 98%, 부룬디 82%, 에티오피아 75%, 르완다 71%에 달한다고 한다. 또 커피 모노컬처의 부자연스러운 생산 시스템은 해당 국가의 생태계를 파괴해버렸다. 커피향이 마냥 향긋하게 느껴지지 않을, 섬뜩한 역사이기도 하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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