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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일식 요리의 지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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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12면

신라호텔 일식당/아리아케 이태영 차장/아리아케의 요리1 재료에 밑간을 해 바삭하게 튀겨낸 튀김은 간장 없이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 2 생선이면서 닭고기의 육질을 가진 복어는 종잇장처럼 얇게 회를 떠도 쫄깃한 맛을 유지하는 게 특징이다. 3 가장 좋은 생선만을 엄선해 제철에 맞게 제공되는 스시는 아리아케의 대표 음식이다.

서울 신라호텔 ‘아리아케’
아리아케만의 장점을 묻자 이태영 차장은 주저 없이 ‘표준화’를 꼽았다. 조리 테크닉은 물론 식재료의 선택까지 모두 매뉴얼로 정리돼 있다는 것. 주방장이 바뀌더라도 언제나 같은 맛을 내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는 게 이 차장의 설명이다.

가령 겨울철 별미인 복어지리는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생명이다. 그런데 인공 조미료를 가미하면 복어의 자연스러운 맛은 사라진다.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면 복어지리 한 그릇에서 기대할 수 있는 다양한 맛은 무엇으로 표현할까. “신라호텔은 2년 전부터 재료 구매 단계부터 인공 조미료 사용이 전면 금지돼 있어요. 야채의 당분을 이용해 단맛을 이끌어낼 수밖에요. 그런데 그 단맛이 항상 일정해야 하니까 요리사들이 매일 수십 개의 지리를 끓였던 거예요. 무를 이만큼, 배추를 저만큼 넣으면 어떤 맛이 나더라, 아리아케만의 기준을 세운 거죠.”

이태영 차장이 꼽는 두 번째 장점은 최고의 식재료다. 정말 좋은 요리는 ‘식재료 : 요리사의 기술 : 서비스=4 : 4 : 2’의 비율이 맞아야 하고, 그중 가장 중요하면서 다른 곳들과 뚜렷하게 차별되는 요소가 바로 식재료라는 거다. 제아무리 솜씨 좋은 요리사도 재료를 잘못 선택하면 이미 절반의 실패를 안고 시작하는 셈. 결국 ‘신선하고 질 좋은 원재료를 어느 지역의 누구로부터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가’ 하는 식재료의 매뉴얼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아리아케는 꼼꼼한 현지답사를 거쳐 국내와 일본의 주요 산지에서 식재료를 구입하고 있다. 주 2회 완도·진해·제주를 직접 오가는 활어차를 운영하는가 하면 최상의 공급원 확보를 위해 별도의 팀을 일본에 상주시키고 있다. 일본 내 최고의 레스토랑을 벤치마킹하면서 꾸준히 협력관계를 유지해 온 것도 아리아케만의 일식(기준)을 만드는 과정 중 하나다.

주바코의 8대 장인/오타니 신이치로/주바코의 요리 4 장어 간을 주변의 껍질로 감아 구운 꼬치 요리 5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살짝 찐 장어로 덮은 스시. 옆에는 장어 뼈 구이가 놓여 있다. 6 하얗게 구워낸 ‘장어 소금구이’.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 11월에도 열리고 있는 ‘3대 명인전’에 참가한 일본의 전설적 스시 전문점 ‘기요다 스시’, 일본 최고의 튀김 요리 전문점 ‘덴푸라 미카와’, 200년 전통의 장어 전문점 ‘주바코’가 아리아케의 파트너들이다. 예를 들어 아리아케의 대표 음식은 스시다. 이는 기요다 스시로부터 많은 부분을 차용하고 있다. 일단 초밥에 가장 어울리는 고시히카리 종자의 쌀을 독점 공급받아 짓는 밥은 설탕 없이 식초와 소금만으로 간을 한다.

양질의 쌀은 자체에 당분이 충분해 이것을 끌어낸다면 스시 본연의 맛이 훨씬 더해진다는 이유다. 설탕이라는 인공 단맛을 배제하면 각각 다른 종류의 생선 살들이 밥과 어우러졌을 때 고유의 맛을 내기에도 좋다. 아리아케 스시가 약간 짠 것도 과학적으로 단맛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짠맛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짠맛 가운데 단맛 찾기’ 외에도 아리아케 스시에는 색다른 묘미들이 숨어 있다. 한입 크기에 딱 맞는 사이즈, 스시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장렬히 희생당한(정말 맛없는) 생강초절임 등.

이태영 차장은 좋은 일식요리는 어부·유통업자·요리사 세 사람이 전문가가 됐을 때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물론 제4의 전문가는 고객이죠.” 모든 창조의 시작은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시작되는 법. “그런 고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요리사에게 큰 복이죠. A가 원래는 a뿐 아니라 b나 c의 맛을 낼 수도 있는 재료인데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는다면 그 요리사는 a만이 최고의 맛인 줄 알고 평생을 살겠죠. 다행히 신라호텔 요리사들은 최고의 프로 고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오가며 다양한 미식을 경험한 고객들은 때론 우리도 몰랐던 요리의 세계를 알려주죠.”

2004년 새 단장 후 매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는 아리아케의 성공 비결은 단순하다. “지금 이 시간만큼은 대한민국 최고의 요리를 먹고 있다”는 고객의 신뢰와 함께 최고의 요리를 제공한다는 요리사의 자부심이 공존하는 것. 다양성을 위해 제철이 아닌 생선을 수십 종류 구비할 바에야 오늘 스시 종류가 비록 네 종류가 될지라도 고객을 설득시키겠다는 요리사의 이유 있는 고집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아직 부족한 게 딱 하나 있어요. 요리를 잘 음미하기 위해서는 모임이나 요리의 종류에 따라 실내 분위기도 달라져야 하는데….” 진정한 요리사라면 시각적 미학에도 능통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래서 한 달에 두 번 일본인 스타일리스트에게 꽃꽂이를 배우고 있다는 이태영 차장. 26년차 중년 요리사의 수줍은 고백은 ‘신뢰’라는 견고한 향기를 타고 전해진다. 문의 02-2230-3356

도쿄 장어 전문 요리점 주바코
100년 전통의 ‘미슐랭 가이드’는 음식 맛·가격·분위기·서비스 등을 기준으로 엄선한 식당에만 별을 붙여준다. 하나·둘·셋으로 등급이 나뉜 별은 세계 미식가들을 위한 지표이자 신뢰의 증표가 된다. 2007년 첫 발행된 도쿄판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소유한 레스토랑의 숫자는 100여 개가 넘는다. 물론 미슐랭이 판단한 만큼 모두 훌륭하다. 그런데 일본인에게 미슐랭의 별은 유럽에서만큼 절대적이지 않다. 이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화(和). 음식 맛, 서비스, 인테리어, 마당의 조경, 주인의 철학, 종업원의 성심…. 그리고 이 모든 게 화합해 이룬 기운이 켜켜이 쌓인 ‘시간’을 소중히 생각한다.

도쿄 아카사카에 있는 ‘주바코(重箱)’는 8대째 직계손으로 이어진 전통 장어요리 전문점으로 2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상호명은 음식을 보관하는 상자 이름에서 유래됐다. 일본에서는 ‘주바코’라는 옻칠한 상자에 장어를 넣는 습관이 있는데, 일본에서 처음으로 ‘주바코’에 장어요리를 담아 고객에게 제공한 음식점이 주바코다.

아카사카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현재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56년. 지금까지 50여 년째 한자리에서 영업 중이다. 높은 빌딩 사이에 조용히 자리 잡은 2층 전통가옥의 격자문을 열면 포석을 깔아 놓은 마당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서울에서 흙 마당을 밟기 귀하듯 도쿄에서도 전통식 정원을 꾸며 놓은 곳은 흔치 않다. 안내된 다다미방에 앉으면 벽 한쪽을 터서 만든 커다란 창문으로 키 작은 나무들이 아담하게 들어선 안뜰이 보인다. 눈이나 비, 아니 그저 햇빛만 길게 들어도 좋을 풍경이다.

일본 전통의 요정 구조를 가진 실내는 평범하다. 좁은 나무 복도, 여섯 개의 다다미방(2인실부터 18인실까지), 주방이 전부.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식탁부터 나무 의자 하나까지 예사롭지 않다. 무심하게 벽을 뚫고 나온 듯한 나무 기둥의 마디 생김은 섬세한 조각 같다. ‘화려하다, 고급스럽다’ 등으로는 표현이 안 되는 진정한 최고들만의 표지 ‘화’의 가치는 이런 거다. 고객 또한 진정한 프로가 아니면 평범함으로 치부되어 놓칠 수도 있는 어떤 기운.

주바코의 장어요리는 점심(1만3000엔), 저녁(1만7000엔) 코스로만 제공된다. 저녁 코스에는 우선 전채 요리로 작은 전복에 미역을 감싸 넣고 막소금과 함께 구워 낸 ‘전복소금 가마’가 나온다. 접시에 함께 나온 장어 뼈 구이는 씹을수록 구수하다. 두 번째 요리는 ‘장어 간 산쇼 구이’. 장어의 간 주변을 지느러미 껍질로 감아 구운 꼬치구이 요리로 장어 간의 쌉싸래한 맛이 독특하다.

산초 향기 깊게 스민 붉은 된장으로 만든 ‘잉어 된장국’ 역시 새롭다. 메인 요리로는 장어를 하얗게 구워 소금으로만 간을 한 ‘시라야키’와 데리 소스를 발라 갈색으로 구운 ‘카바야키’가 나온다. 대를 잇는다는 표현은 어쩌면 이 소스 때문에 가능한지 모르겠다. 200년 전 처음으로 끓여낸 소스를 원 국물로 두고 이후 한번도 버리지 않고 계속 물을 추가하며 우려낸 깊은 맛. 시간이라는 말 외에 그 맛의 비결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11월 말 신라호텔 3대 명인전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할 8대 장인 오타니 신이치로는 30대의 젊은 요리사다. 그에게 가업을 잇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어깨너머로 보아 온 모든 풍경이 나를 키웠죠. 부모님이 일하는 주방과 홀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터였어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것도 주바코의 마케팅을 돕기 위한 계획의 일부였죠.” 지난해 아버지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고, 다시 한국을 찾을 것을 염두에 둔 오타니는 한국어 명함까지 만들어 두었다. 젊고 의욕 넘치는 신세대답다. 사실 주바코는 일본 내에서도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참고할 자료조차 검색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 언론에 처음으로 문을 연 것은 젊은 장인의 글로벌 마인드 덕분이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 젊은 장인의 요리법은 과연 어떤가. 이것만은 철저히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찬물에 장어를 기절시켜 목에 안 걸릴 정도로 뼈를 발라낸 후 숯불을 이용해 초벌구이를 하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나무 찜통에서 20~30분간 찐다. 이후 하얗게 또는 델리를 발라 두 번 굽는다. 이 모든 과정이 손님이 식당에 들어온 후부터 진행되며, 부엌에서 일하는 식구는 아버지와 아들·보조원 단 셋. 그러니까 숯불에 부채를 부쳐 가며 장어를 구워 내는 모든 과정이 주바코에서는 맛을 지키기 위한 요리사의 성실한 의무다. 문의 81-03-3583-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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