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의 위력 …‘19년 사우디 징크스’ 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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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20일(한국시간)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3차전에서 후반 31분 이근호(대구), 후반 45분 박주영(AS 모나코)의 연속 골을 앞세워 사우디를 2-0으로 제압했다. 1989년부터 이어진 사우디전 무승(3무3패) 징크스가 깨졌고, 2승1무의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와 1-1로 비긴 이란(1승2무)을 제치고 B조 1위를 지켰다.

한국 선수들이 20일(한국시간) 사우디전 후반 이근호의 선제골이 터지자 허정무 감독(左) 쪽으로 달려가 ‘아기 어르기’ 골뒤풀이를 하고 있다. 허 감독은 딸이 쌍둥이를 낳아 할아버지가 됐다. [리야드=임현동 기자]


◆‘허무축구’ 비난과 새 얼굴 찾기=허정무팀은 올 1월 칠레 평가전부터 0-1 패배로 시작했다. 북한과 4연속 무승부를 기록했다. 월드컵 3차예선은 졸전 끝에 가까스로 통과했다. ‘허무 축구’를 향해 “축구장에 물 채우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벼랑 끝으로 몰렸지만 허 감독은 제 길을 고집했다. 지난달 4-1로 승리한 UAE와의 최종예선 2차전이 분수령이었다. 이 경기부터 선발 멤버가 서서히 자리 잡아 갔다.

허 감독 부임 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74명. 상당수가 중도 탈락했지만 곽태휘(전남)·정성훈(부산)처럼 진흙을 털고 광채를 빛낸 선수도 있다. 이청용·기성용(이상 서울) 등 유망주도 허 감독의 지원 속에서 대표팀 핵으로 성장했다. 다양한 실험 속에서 자연스레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10년 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박지성(맨유)을 발굴한 사람도 허 감독이었다.

새 얼굴이 대거 등장하면서 붙박이 주전은 옛말이 됐다. “소속팀에서 벤치를 지킨다면 박지성도 대표팀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게 허 감독 지론이다. 팀 내에는 건강한 긴장감이 흐른다. 정성훈·이근호에게 최전방을 내준 박주영은 사우디전 후반 교체로 들어와 골을 터뜨리는 집중력을 보였다.

◆‘박 캡틴 효과’와 노장투혼=경기가 끝난 뒤 주장 박지성은 “좋은 분위기에서 주장을 맡은 것이지 내가 맡아 (분위기가) 좋아진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 내내 박지성은 다른 선수보다 많이 뛰었고 몸을 던졌다. 전반 사우디 진영 왼쪽에서 한국에 좋은 기회가 많았던 것도 그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는 후반 중반 사우디의 결정적 프리킥 찬스 때 과감히 육탄방어를 펼쳤다. 경기뿐만 아니라 훈련장에서도 앞장서는 그를 보며 후배들도 한 발 더 뛰었다.

사우디전 초반 이영표(도르트문트)는 골문 앞에서 노련한 위치 선정으로 사우디의 결정적 슈팅을 막아냈다. 그 골이 들어갔다면 경기 양상은 사우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1년 만에 돌아온 이운재(수원)도 후배들을 독려하는 것은 물론 노련함으로 사우디 스트라이커 나예프 하자지의 퇴장을 끌어냈다.

리야드=오명철 기자 ,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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