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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對北 제재 풀지 않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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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제주도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 미국은 북한의 ADB 참여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는 정치.외교문제를 경제문제에까지 확대 적용한다는 미국의 일관된 정책의 일환이다. 북한 핵문제와 인권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북한의 국제 경제공동체 참여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ADB에서 각종 지원을 받기 위해 1997년과 2000년 두 차례 공식 가입 신청을 하는 등 9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ADB 가입을 추진해 왔으나 미국의 반대로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이 인권과 무기수출 등을 이유로 발동하고 있는 각종 경제 제재 역시 처음부터 북한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은 미국이 가하고 있는 모든 제재조치의 영향을 받고 있다.

북한은 최근 미국 정부가 전 세계 개도국들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각종 경제지원 프로그램에서 배제돼 있다. 북한은 미국이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일반무역관행(NTR)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설사 북한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미국 당국을 설득하더라도 미국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인권문제 등을 내세워 NTR 국가로서의 지위를 보장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노동권과 지적재산권, 마약 밀매 금지와 관련된 기준의 제약을 받긴 하지만 일반특혜관세제도(GSP)에 따라 몇몇 가난한 국가엔 '우선적이고 일방적인 비관세 특혜'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국제적인 근로기준을 무시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 아무리 외교관계가 개선되더라도 GSP 자격을 얻어낼 리 만무하다.

미국과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과 같은 다른 국제 경제단체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출신의 이들 경제단체장은 국제 테러범죄와 마약 밀매, 생물.화학무기 확산, 인권 및 종교 탄압 등의 이유를 들어 북한의 국제사회 참여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미국은 87년 대한항공기 폭파 이후 밝혀진 북한의 테러 지원사례가 전무한데도 올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 재지정했다. 미국은 과거 쿠바의 미국 민항기 납치를 이유로 쿠바의 국제사회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미국의 올해 테러 보고서에 추가됨에 따라 미국은 더더욱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시킬 이유가 없어졌다. 설사 미국이 북한의 국제 경제단체 가입을 수용하더라도 북한이 단체 가입을 위한 시장 투명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미 국무부는 지난 3월 발표한 연례 '국제마약통제전략보고서'에서 "북한당국이 정책적으로 마약 밀매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심을 강하게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호주 경찰이 헤로인 125㎏을 밀수한 혐의로 나포한 북한 선박 봉수호 사건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북한의 문제는 인권과 핵.마약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북한은 멸종위기종들의 밀수에도 관여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사무국(CITES)은 그간 북한 외교관들의 상아 등 멸종위기 동식물 밀수행위를 지적해 왔다.

이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철저히 정치적 이익을 우선하는 미국의 대외 경제정책은 북한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대북정책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데다 북한의 변화 또한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지금과 같은 대북 제재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마커스 놀랜드 美 국제경제硏(IIE) 연구원
정리=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