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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올 경제정책 관련 한승수 부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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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시작부터 시련이 가중되고 있는 금년 경제.
대선을 앞둔 정치적 불안과 불황심화속에 파업돌풍까지 휘몰아치고 있다..97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한 한승수(韓昇洙)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의 표정은 전에 없이 침울하다.
-파업 때문에 경황이 없겠습니다.
“그렇습니다.1주일째 과천 집무실에 못들렀습니다.하루빨리 진정돼야 할텐데 정말 큰일입니다.이런식으로 계속된다면 낭패입니다.” -올해 성장률을 6%내외로 잡았던데,파업이 확산되면 5%나 그 이하로 더 떨어진다는 말입니까.
“1분기성장은 예상보다 훨씬 나빠질겁니다.올해 들어서만도 이미 수출차질이 4억달러이니까.파업이 계속되면 성장 뿐만 아니라국제수지나 물가,모든 면에 걸쳐 매우 심각한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계 파업 움직임은 단순한항의차원이 아니잖습니까.노동법 개정내용은 물론이고 절차 자체가무효라며 정부와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것 아닙니까.이에 대해 여당도 재개정을 포함한 정치적인 협상여지를 나타내고 있고요.
“다소 혼선이 있었던 것같은데,그렇지 않아도 엊그제 정부.여당이 입장정리를 분명히 했습니다.
국회통과과정은 바람직하지 못했던 것을 인정합니다.그러나 확정공포된 법을 시행도 해보기 전에 다시 고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다만 앞으 로 노동관계법 시행령이나 특별법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근로자들이 당장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개정법안을 보완할 계획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노동기구(ILO)등 국제기구로부터의 압력까지 가세되고 있는데.
“개정노동법은 국제기준에 비춰 보더라도 하자가 없습니다.복수노조의 허용시기를 3년 유예한 것을 두고 문제삼고 있지만 국내여건상 일시적으로 연기한 것이지 복수노조 자체를 불허한 것은 아니잖습니까.오히려 국내법에는 선진국보다 훨씬 앞 서 있는 조항들도 많습니다.예컨대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같은 제도는 선진국엔 없는 제도입니다.이런 점은 덮어두고 복수노조 허용시기만 문제삼는 것은 편향된 시각입니다.더구나 외국노조관계자들이 한국에 와서 훈수를 두는 것은 납득 할수 없어요.실업률이 10%에 이르고 임금을 1~2%밖에 못올리는 나라의 노조관계자들이 실업률이 세계 최저수준이고 임금을 15%씩 매년 올려온 한국의 노조파업에 연대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일각에서는 경제난을 설명해도 근로자들이 실감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정부에 대한 신뢰가 문제 아닙니까.
“정부가 잘했다곤 할 수 없어요.그러나 사람들이 자기 일자리에 탈이 없는 한 경제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파업이 장기화되고 경제가 무너지면 정리해고제 때문이 아니라 기업 자체가 망해 직장을 잃게 되는 사태가 온다는 사 실을 빨리깨달아야 합니다.” -선거의 해인데,실업이 늘어나는 것을 정부가 그냥 놔두겠습니까.
“정부로서도 한계가 있습니다.현재 경제상황속에서는 실업증가는어느정도 각오해야 할 겁니다.선거라고 해서 인기정책에 매달릴 처지가 아닙니다.” -올해 경제운영에 있어 무엇을 가장 시급한과제로 잡고 있나요.
“역시 경상수지적자 문제지요.올해 경상수지 적자규모를 1백40억~1백60억달러로 잡기는 했지만 이것도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니예요.성장률 목표를 낮게 잡은 것도 경상수지적자 축소에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입니다.” -지난해에도 애는 썼지만 효과를못보지 않았습니까.올해는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는지요.
“지난해 경상수지적자 2백30억달러 가운데 1백85억달러는 국제 반도체 시세폭락과 에너지 수입증가로 인한 것이었습니다.반도체가격이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에너지 수입은 가격을올려서라도 억제할 방침입니다.특히 국제시세보다 훨 씬 싼 등유.경유.LNG가격은 높일 수밖에 없어요.기업원가에 부담이 되기는 하겠지만 한국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산업구조를 에너지 절약형으로 바꿔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요즘 금융시장에서는 설날 전후나 3~4월께가 가장 어려울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습니다.정부는 최근 구조조정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해왔는데,기업 부도가 부쩍 심해질 경우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입니까. “경영부실 기업을 억지로 살리기 위해 자금지원을 해줄 수는 없겠지요.그러나 경영은 괜찮은데 연쇄부도의 영향으로 일시적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융개혁위원회 신설 방침이 발표된 뒤로.빅 뱅'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있습니다.하지만 금융계에서는 잘해보자고 만든 금융개혁위원회가 금융시장 불안이나 불확실성을 확대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옵니다만.
“현 정부가 할 수 있는 단기과제는 3월까지 골라내 추진하겠지만 금융정책의 큰 줄기와 관련된 핵심과제는 다음 정부에 넘길것입니다.따라서 금개위로 인해 그동안의 금융개혁 일정이 크게 앞당겨진다거나 금융시장에 혼란이 오지는 않을 것입 니다.” -청와대가 금융개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재경원이 배제된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기존의 금융발전심의위원회도 있는데,왜 또 금개위를 만드는 겁니까.
“현 정권이 마지막까지 강력한 개혁의지를 실천하려는 차원으로이해해 주십시오.” -정권말기에 어려운 문제를 표나게 해보이려다가 오히려 부작용만 낳는 건 아닐까요.
“일도양단식으로 한숨에 해치우는 식으로는 절대 되지 않을 겁니다.금융정책의 큰줄기를 다치지 않는 범위안에서 장기적인 그림을 그리도록 할 작정입니다.재경원과 한국은행의 업무 재조정 이야기도 나오는 모양인데,이 과제도 다음 정부가 다뤄 야 할 장기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제2의 멕시코사태를 우려하는데 기우입니까.외환수급이 아슬아슬해지는 건 아닌지요.
“최근 외채는 주로 경상수지적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외국의 단기투기성 자금이 대거 국내에 들어와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외채라고 해도 악성채권은 많지 않습니다.
***핫머니 수출입 엄격관리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여건은 멕시코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단기 투기성 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에 대해서는 엄격한 사후관리나 감시를 통해 대비할계획입니다.” -일부에서는 최근 경제정책의 주도권이 재경원에서청와대로 옮겨간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요즘 경제수석과의관계는 어떤가요.
“역대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이 요즘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한 적이 있으면 한번 대봐요.공연히 신문이 만든 이야기입니다.” -정치인과 경제장관의 갈등도 있을 텐데요.
“또 그 이야기군요.나는 정치인이기전에 20여년을 학교강단에섰던 경제학자였습니다.나라경제가 이런판에 내가 어느 쪽에 서있을 것같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정치인 출신 부총리가 정치권의 요구에 약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보지는 않습니까.
“주위에서 날 동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하필이면 이렇게 경제가 어려울 때 부총리를 맡아 고생이 많다는 것을 이해해주는 것이겠지요.솔직히 말해 내가 정치인이기 때문에 나 자신만 다른 마음 안먹으면 오히려 유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을설득하는 것도 사람이나 맥을 아는 사람이 아무래도 낫지 않겠습니까.어쨌든 지금 경제가 이런판에 그런걸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한국경제가 이 고비를 슬기롭게 넘기지 못하면 정말 큰일이 날판인데 경제관료니,정치권이니를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어떻게 해서라도 당면한 어려움들을 극복하는데 힘을 합쳐나가야 합니다.”-아무튼 고생 많으시겠습니다.
〈정리=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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