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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폭력에 시달리는 중·고 운동선수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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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고생 운동선수들이 상습적인 성폭력과 언어·신체적 폭력에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남녀 학생 선수 1139명을 조사한 결과다. 열 중 여덟 명꼴로 지도자나 선배 등으로부터 폭력 피해를 보았고, 열 중 여섯 명은 성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조사 대상인 한 여중생은 선배들의 거듭되는 폭력에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그간 체육계에서 폭력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필요악으로 어느 정도 용인돼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 선수들의 절반 이상이 오히려 “폭력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고 할 만큼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어릴 때부터 폭력을 경험한 학생 선수들이 나중엔 가해자가 되어 후배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악순환마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피해 학생 중 상당수는 쉬쉬하며 참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를 제기했다가 운동을 그만두라는 등 불이익을 당할까 겁이 나서다. 학생 선수들은 전지훈련이며 대회 참가 때문에 제대로 학교 수업을 받을 길이 없다. 그래서 덧셈·뺄셈도 제대로 못할 만큼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운동 외엔 대안이 없는 절박한 현실이 어린 선수들로 하여금 욕설과 폭행, 추행과 강간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견디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체육계의 인권침해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체육계는 자정운동을 다짐했고 정부는 이런저런 정책 대안들을 내놓았다. 내년부터 초·중·고 학생들의 학기 중 축구대회를 전면 금지하기로 한 것도 그 일환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학생 선수들을 ‘운동 기계’가 아닌 ‘학생’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공부할 수 있는 권리, 맞을 걱정 없이 운동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자면 합숙소부터 폐지해야 한다. 학기 중 대회 금지조치가 다른 종목으로도 확산돼야 한다. 또한 연세대 농구부처럼 이미 공부에 뒤처진 선수들에겐 학습 도우미를 붙여 돕는 방?
홴?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