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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한 베를린필 지휘자 사이먼 래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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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운좋은 소수가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게 아니다. 이 점을 되도록 많은 젊은이에게 알리고 또 보여주고 싶다.”

18일 내한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53)은 ‘되도록 많은 청중을 만나는 오케스트라’를 강조했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수석 플루트 연주자인 엠마누엘 파후드(38)도 거들었다. “이탈리아의 축구팀처럼 하겠다는 거다. 그들은 연습 장면을 TV를 통해 공개하고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는 전략으로 팬을 확보한다.”

120년 역사의 베를린필이 이날 강조한 것은 ‘변화’다. 베를린필은 내년 발매되는 브람스 교향곡 전곡(4곡) 앨범 중 1번의 디지털 음원을 17일 공개했다. 한국과 일본의 각종 음악 사이트에서는 브람스 1번을 사서 들을 수 있다.

베를린필이 정식 앨범보다 디지털 음원을 먼저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베를린필은 이를 ‘디지털 콘서트홀’이라고 부르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 있는 가상 음악회장이라는 의미다. 베를린필의 미디어 전략을 담당하는 파후드는 “이 홀은 현재 개발 중”이라며 디지털 음원의 확대 공개를 예고했다.

◆한국의 청소년에게=한국 공연에서도 베를린필의 변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공연 당일인 20일, 21일 오전에 특별한 콘서트를 한 번씩 더 연다. 원래 지휘자와 단원만의 연습 시간이었던 오전 10시~12시30분에 소외계층 청소년을 400명씩 초청, 공개 리허설을 진행하는 것이다. 서울은 물론 충청남도, 강원도, 부산 등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저소득층, 장애인 학생들이 베를린필의 연주를 듣게 된다.

래틀은 “대부분의 콘서트는 소수를 위한 것이다. 게다가 베를린필은 한국에 자주 오지도 못하지 않는가”라며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리허설 공개는 래틀이 직접 제안했다. 국내 콘서트 중 최고 티켓 가격(45만원) 등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리허설을 공개한 이유 중 하나다.

◆독일의 청소년에게=베를린필의 행정감독 파멜라 로젠버그는 “클래식 음악이 귀족문화처럼 인식돼 있는 것을 어느정도 인정한다”며 “투어는 어쩔 수 없이 비싼 행사이지만 적어도 홈타운인 베를린에서는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베를린필이 베를린에서 연주할 때는 항상 50장씩을 청소년용으로 따로 챙겨놓는다. 로젠버그는 “일괄적으로 15유로인 이 티켓은 매번 순식간에 매진된다.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는 청소년은 공연당 50명뿐이지만 클래식에도 그들을 위한 여유 공간이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는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베를린 내의 학교에 속한 오케스트라는 베를린필과 함께 연주할 기회도 얻는다. 8~18세의 학생 오케스트라가 베를린필 단원들에게 레슨을 받으며 연주해보는 기회가 정기적으로 주어진다는 것. 래틀이 직접 학생들을 지도한다. 래틀은 “음악으로 누군가의 삶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20일부터 이틀 동안 브람스 교향곡을 두 개씩 나눈 한국 연주가 끝나면 베를린필은 2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일본의 네 개 도시를 돈다. 일본의 프로그램에는 브람스 교향곡 전곡에 말러·베토벤의 작품이 추가됐으며 아시아·유럽 투어는 내년 2월까지 계속된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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