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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타임 선수가 축구 거장으로 … ‘헤어드라이어’ 퍼거슨 신화 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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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958년 11월 15일 스코틀랜드 남서부 소도시 언트로나우어에서는 스코틀랜드 하부리그 언트로나우어-퀸즈파크의 경기가 열렸다. 퀸즈파크 소속이던 17세 소년은 자신의 데뷔전이던 이 경기에서 골을 터뜨렸다. 당시 공단 견습생이었던 소년은 얼마 후 캐나다로부터 좋은 조건의 취업 제안을 받았지만 결국 축구를 택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08년 11월 15일. 백발이 된 소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벤치를 지켰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무명선수 시절을 보낸 알렉스 퍼거슨(67) 맨유 감독은 이날 스토크시티를 5-0으로 대파하고 축구인생 50주년을 자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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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감독은 1974년 현역에서 은퇴하자 스코틀랜드 하부리그 팀을 맡아 지도자 인생을 걸었다. 그는 엄격한 선수관리로 성공신화를 쓴 ‘관리자형 지도자’다. 그의 별명(헤어드라이어-퍼거슨 감독이 선수 면전에 대고 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모습이 헤어드라이어에서 나오는 열기와 소음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음)은 그의 불같은 성격을 그대로 말해준다.

퍼거슨 감독은 애버딘 감독 시절이던 83년 레인저스를 꺾고 스코티시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도 축하 자리에서 TV카메라도 의식하지 않은 채 선수들을 호통쳤고 그 장면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맨유 감독이던 92년에는 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라이언 긱스와 리 샤프가 파티를 벌인다는 제보를 받자 차를 몰고 가 현장을 적발, 그 자리에서 두 선수를 ‘박살’낸 일화도 유명하다. 2003년 팀 분위기를 잡기 위해 라커룸에서 축구화를 걷어차 데이비드 베컴의 얼굴에 상처를 내기도 했다. 결국 베컴은 맨유를 떠났다. 베컴뿐 아니라 뤼트 판 니스텔로이, 얍 스탐도 당대 최고 스타였지만 퍼거슨과 기싸움을 벌이다 결국 항복, 팀을 떠났다.

상대 감독과의 심리싸움에도 최고수다. 애버딘을 맡고 있던 83년 레알 마드리드와의 컵위너스컵 결승을 앞두고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레알 감독에게 위스키를 선물했다. 노장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를 가장해 상대의 방심을 유도한 것이다.

며칠 뒤 결승전에서 애버딘은 레알을 2-1로 꺾고 우승했다. 뉴캐슬과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다투던 95~96시즌 때는 뉴캐슬의 최종전 상대인 리즈를 가리켜 “과연 최선을 다할까”라고 공개적으로 빈정댔다. 자극받은 리즈는 보란 듯 뉴캐슬을 꺾었다. 올여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적설이 돌자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를 제쳐두고 소문의 진원지 레알을 공격했다. 구단주를 직접 겨냥한 퍼거슨의 독설 때문에 이적 문제의 초점이 호날두 대신 레알 대 퍼거슨 구도로 흘러갔다. 결국 이적은 없던 일이 됐다.

50주년을 맡아 쇄도하는 인터뷰 때마다 퍼거슨 감독은 “언젠가 정든 축구계를 떠나겠지만 당분간 그럴 일은 없다”며 축구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표시했다.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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