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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하우스'의 커피 한잔-향수 그윽한 클래식 카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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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동숭동 학림다방을 아는가.70년대 시인 김지하와 소설가 김승옥이 청춘시절 아지트를 삼았던 곳 말이다.짙은 담배연기 속에서제각각 문학적 감수성을 익히던 공간쯤 됐던 셈이다.자살로 생을마감했던 전혜린을 학림에서 떠올리는 것은 너무 비약일까.시인 천상병과 음악가 정경화.명훈 남매가 즐겨찾던 서울 종로의 르네상스 음악감상실 역시 예술적 향취가 가득하긴 마찬가지였다.
83년 학림다방이 헐린데 이어 87년 르네상스가 문을 닫았다.고전음악 매니어들에겐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심각한 사건이었지만 다들 무관심했다.문득 갈곳을 잃은 한 세대가 생겨났다.
댄스뮤직과 록으로 치장한 다방.카페 어디도 그들을 반길 표정은아니었고 그들 스스로도 적응이 쉽지 않았다.자칭.잃어버린 세대'의 주역들.
싸구려 전축조차 흔치 않았던 시절,고전음악다방은 예술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사랑방이었다.고가의 유명브랜드 음향기기와 희귀음반들은 음악가는 물론 문인.화가및 아마추어 음악애호가들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했다.이런 분위기에 젖었던 마지막 세대를 지금의40대로 규정하면 다소 민감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지도 모른다.막걸리에 취해 인생을 얘기하던 학림다방 시절의 사연과 신청곡을 적어 쑥스럽게 내밀던 르네상스에서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하는것은 감상적일 수도 있다.그러나 그 희미한 옛추억들을 다시 짜맞추기 위한 공간이 하나 새로 생긴 것을 설명해야 한다면….서울서초구서초동에 문을 연 클래식 카페 .바흐 하우스'가 바로 그것이다.막걸리가 포도주로,낡은 재킷의 레코드판은 콤팩트디스크(CD)로 바뀌었지 만 카페를 메운 손님들은 그때 그 얼굴들이다. 이 카페는 .바흐 협회'회원들이 꾸민 공간이다.40대가 주축이 된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87년부터 낡은 레코드나 진공관 앰프를 구입하기 위해 전문오디오가게를 기웃거리던 사람들끼리 만나 결성한 모임인 것도 예사롭지 않다.회원들은 마땅한 둥지 하나없이 장소를 옮겨 다니며 음악감상회를 갖다가 모임을 확산시킬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자는데 뜻을 모으고 카페를 차렸다.3천여장의 CD와 1억원대 오디오에서부터 실내장식까지 전부 회원들이 직접 골랐다.
이 협회 고영근(46.의사)회장의 말.“서울대 문리대생들이 .제25강의실'이라고 부르던 동숭동캠퍼스 앞 .학림다방'은 본과 3~4학년 시절 의사고시 준비에 정신없던 나에겐 안식처이자공부방이었습니다.책을 싸 짊어지고 다방의 삐걱거 리는 나무계단을 오르던 기억은 학창시절 추억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습니다.” 회원들중 대다수가 의사.법조인이기 때문인지 찾아오는 사람들도 법조인과 의사들이 주류다.하지만 비슷한 향수를 갖고 있는40대 주부들의 발걸음도 점차 늘고 있다.
“다양한 직업과 연령층의 회원을 받아들여 예전에 우리가 향유했던 클래식음악의 낭만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공간으로 가꿔가겠다”는 것이 이 카페에서 초보자를 위한 기초음악강좌를 준비하고있는 음악평론가 양현호(42)씨와 협회 회원들의 바람이다.관심있는 동호인들은 02-522-1750으로 연락하면 된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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