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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읽기>경마,뿌리칠수 없는 매력의 줄달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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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부인은 이혼소송을 냈다.법원은 이혼을 명령했다.경마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남편은 더이상 가정에 대한 의무를 지속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말하자면 남편은 금치산자로 낙인찍혔다.일전신문에 보도됐던 일화다.경마를 즐기는 남자들은 이 제 조심해야한다.경마냐,.마누라'냐.둘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엄중경고를 받을 것이기에 그렇다.이런 경우 경마를 택하는.애마남편'은 얼마나 될까.
만약 남편이 프로야구나 농구경기 관람에 빠져 집안 돌보기를 등한히 했다면 이혼명령까지 나왔을까.몇번 정도 경고가 선행될 것은 분명하다..마누라'대신 야구를 택하는 남편은 거의 없을 것이다.그런데 왜 경마는 유독 사람을 잡을까.그 사람 잡는 매혹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경마는 분명 도박이다.도박의 종점이 경마라는 통설은 그 중독성의 강도를 재는 기준일 뿐이다.하지만 경마는 도박이 아니다.
사실 실력이 보태진다 하더라도 도박의 본질은 우연성이다.그 우연성은 비합리성과 일란성 쌍생아다.그러나 경마는 우연성에 기초한 도박이 아니다.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에 의한 레저활동이라는 것이다.이렇듯 2중적으로 겹쳐져 있는 대목이 바로 경마의 매혹을 슬슬 풀어내는 실타래가 된다.
도박의 속성인 이 우연성이라는 범주는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되도록이면 배제되는 영역이다.근대적 생산및 유통,그리고 분배는 투명한 계산으로 이뤄지는 필연적 과정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역설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자본주의적 대중은 이 우연성을 갈망한다.
베버나 하버마스의 말마따나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은 합리화의 발견과 그것의 확대과정이었으나 결국엔 일상을 식민화시키는결과를 초래한다.체계유지에의 봉사를 제일 덕목으로 치는 관료적합리성은 대단히 협소하고 일상의 푸른 현실을 다 싸안을 수 없다.우연성.비합리성을 마녀사냥하듯이 지하에 몽땅 가둬버리거나 혹은 합리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확대 가능성을 하나하나 가지쳐 나가는게 보통이다.이에 합리를 강요당하는 식민지 백성들은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금지의 영역인 비합리성의 세계로 망명해 가고자 하는 욕망을 수시로 드러낸다.
도박.분명 매력적인 망명지이지만 거기에 가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주위를 둘러보면 망명에의 욕망을 채워줄 공식적인,그래서 안전한 망명처는 많지 않다.하지만.우연히'1만원을 베팅했다가 2천7백만원을 땄다는 경마장의 신화를 듣는 순간 그것은 대단한 희소식이 된다.합리성의 억압으로부터 탈출하는 것과 동시에 거액의 탈출경비까지 겹치기로 제공받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1만원을 투자해 1분만에 몇천배를 뻥 튀기는,지극히우연성에 근거한 도박적 결과는 금지된다.그것이 현실이 돼서는 안된다.현실의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그래서 그것은 단지 신화로만 배치돼야 한다.근대 자본주의는 필연성과 합리화를 무기로겨우 전근대의 우연성및 비합리성,즉 신화.마술.주술의 왕국을 정복했는데 이제 다시 그 우연성이 공공연히 창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하지만 경마장은 그 우연적이고도 비합리적인,바로 그래서너무나 매혹적인 신화를,금지가 아니라 오히려 장려하는 곳이기에다중적 매혹의 공간이 된다.우연성을 금지하면서 권장하는 곳,합리성을 강조하면서도 비합리성을 주행의 원료로 삼는 곳,이런 모순이 경마장을 움직이는 동력이다.경마가 도박일수 없는 까닭은 마사회장이 도박장 개장 혐의로 구속됐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없는데 있다.하루에 약 3백억원,1년에 약 2조여원씩 베팅된 어마어마한 돈이 경마장 위를 둥둥 떠다닌다.
마사회는 경마에서 잡은 수입을 대단히 유용하게 쓰기도 한다.
각종 장학금이나 정치자금 혹은 문화진흥책에 내놓는 돈이 만만찮다.그렇기에 경마는 대단히 공익적인 사업이다.이익의 한 몫을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는 현대 자본주의의 강요된 덕 목을 마사회만큼 수범적으로 실천하는 곳은 보기 드물다.때문에 경마는 절대돈 놓고 돈먹기를 기본으로 하는 천박한 도박이 될수 없다.국가가 후견인이 되는 도박은 몇몇 예외를 빼놓고는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경마장에 오는 사람들은 경마를 대단히 합리적으로 대한다.경주마에 대한 각종 분석정보와 우승 예상마가 기재된 수십개의 경마 분석지를 연필로 꼼꼼히 체크하면서 우승마를 예상하고 베팅한다.순수과학의 핵심인 통계와 확률에 입각하는 것이다.또 좋은 말을 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수년간 새벽에 일어나 말들이 연습하는 장면을 유심히 관찰한다.합리적인 과학과 지극한 정성이 결합돼 있다.들인 만큼 나온다는,예컨대 인과성이 분명한 합리적 과정을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
이런 맥락은 합리성의 지배를 피해 우연의 왕국으로 망명해 왔지만 그들은 여전히 합리성에 지배받고 있는 풍경에 다름 아니다.그러나 이런 경마의 모순,그러나 매력임에 분명한 성감대는 바로 여기서 출현한다.1만원 베팅에 수천만원을 배당 받는 일은 그런 과학적 분석에서는 도저히 일어나지 않는다.그런 과정을 통한 베팅은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하기 때문에 배당률이 낮은것이다..대박 터지는 일'은 그런 분석적 예상을 비켜간,바로 지극히 우연적인 요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도박이되 동시에 도박이 아닌 경마의 논리는 그래서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형상을 지닌다.욕망은 대개 비합리적인 모습을띠고 있되 현실의 규칙은 그 욕망을 합리적으로 실현하라고 을러댄다.그러나 합리적 욕망 실현은 선택된 사람들에 게만 허용될 뿐이다.그렇지만 경마장은 비합리적 욕망을 합리적 형식으로 포장해 주는 친절한 곳이다.
토요일 오전10시 4호선 경마장역.전철은 수만개의 욕망을 꾸역꾸역 쏟아낸다.그 욕망은 스탠드에 앉아 오늘도 경마장 위를 떠다니는 거액의 돈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그 돈구름을 잡는 날,그날은 우연히 온다.또한 그때까지 기다리 는 과정은 현실의 그 어떤 합리성의 규율도 침범하지 않는 자유롭고 풍만한시간이다.욕망이 무작정 .방목'되는 곳이 어찌 매혹적이지 않을수 있는가.
그러나 한번 더 속으로 들어가면 착각임이 드러난다.우연성과 비합리성이 질주하는 그 경마장의 논리에는 여전히 합리성에의 강박이 웅크리고 있으며,나아가 자본주의 전체 메커니즘으로 보면 철저히 계산된 잉여가치의 합리적 증식과정에 포박돼 있는 장일 뿐이다.그럴 때 과연 경마장의 매혹은 무엇일까.
이성욱<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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