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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이름값 못하면서 툭하면 특위 … 특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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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헌법재판소의 종합부동산세법 위헌 소원 등 사건과 관련한 기획재정부 장관 발언 진상조사소위원회’.

무려 41자에 달하는 이 명칭은 강만수 재정부 장관의 ‘헌재 접촉’ 발언 진상조사를 위해 여야가 만든 위원회의 이름이다. 그러나 8일간 활동한 이 조사위는 ‘이름값’도 못한 채 18일 막을 내리게 됐다.

17일 조사위는 ▶강 장관에게 국회 차원의 경고를 하고 ▶국회 출석을 거부한 헌재 연구관들을 법사위 증인으로 채택해 조사를 계속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을 결과 보고서에 담기로 했다. 그러나 쟁점이 된 재정부가 헌재의 종부세 재판에 영향을 미쳤는지, 사전에 종부세 재판 결과가 유출됐는지 등에 대해선 “위원들 간 이견이 있었다”는 내용만을 담는 데 그쳤다. 결국 정부와 헌재의 접촉에 관한 어떠한 진상도 밝히지 못한 것이다. 한 의원은 “그나마 성과라면 강 장관이 사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결과는 위원회 구성 때부터 미리 예고됐었다. 우선 민주당의 대응이 다소 성급했다. 상임위 등에서 강 장관 발언의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특위를 요구해도 늦지 않았다. 만약 정부와 헌재 사이에 모종의 접촉이 있었더라도 단 일주일 만의 특위 활동으로 밝혀내기 쉽지 않은 사안이라는 점도 고려했어야 했다. 조사 기간 중인 13일 헌재 결정이 내려진 것도 조사위의 맥이 빠지게 만들었다. 급조된 조사위 구성도 문제였다. 법사위와 재정위 위원 일부를 섞은 연석회의 형태로 위원장은 법사위원장이 겸했다. 상임위와 조사위 시간이 겹쳐 위원들이 소위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게다가 조사위엔 아무런 강제력이 주어지지 않았다.

올 초 ‘촛불 정국’ 이후 실시된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는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정치공방만 주고받다 끝나고 말았다. 현재 실시 중인 직불금 국조특위도 “유야무야 끝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직불금 특위는 이날 건보공단의 비협조를 이유로 활동 시한을 일주일간 연장키로 했다.

국회 특위 구성 자체를 탓하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일만 터졌다 하면 남발되는 특위가 ‘용두사미’로 끝난 사례가 많았다는 점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정치공방만 하는 특위보다는 정책 공방이 벌어지는 상임위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이가영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