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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파워엘리트 ② 정부 개입 옹호‘오바마노믹스’설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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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자유무역협정(FTA)을 강력히 비판해 왔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바꾸겠다고도 했다. “한·미 FTA도 결함이 많은 협정”이라고 했다. “FTA 때문에 미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오바마가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를 백악관 경제참모로 쓸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시카고 트리뷴은 최근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에 오스탄 굴스비(39·사진) 시카고대학 경영대학원 교수가 내정됐다고 보도했다.

굴스비는 올 3월 오바마를 아주 난처한 지경에 빠뜨렸다. 그가 한 달 전 시카고 주재 캐나다 영사관 관계자와 만나 “오바마가 FTA를 비판하는 건 정책적인 게 아니고 정치적 계산(political maneuvering)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오바마는 위선적으로 비춰졌고, 노동조합의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도 굴스비는 멀쩡했다. 오바마가 그를 깊이 신뢰했기 때문이다.

굴스비는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와 저소득층 감세,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 감독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오바마노믹스’를 설계했다. 선거기간 중엔 TV에 수시로 나와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의 조세·금융정책 등을 비판했다. 그는 자유무역을 적극 지지하지만 철저한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강조하는 시카고 학파의 본류에선 벗어나는 학자다. 2006년 작고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튼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시카고 학파의 자유주의 경제학과는 차이가 나는 ‘신사회 경제학(new social economics)’을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 신사회 경제학파는 사회적 요인이 사람의 경제행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개인의 행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정부 정책을 통해 사회적 요인이나 환경을 바꾸면 경제 주체의 행태도 바뀐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작은 정부’가 바람직하다는 정통 시카고 학파의 인식과는 다른 것이다. 오바마의 개입주의적인 경제정책은 이런 환경에서 탄생했다.

굴스비는 2004년 오바마가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그를 만났다. 당시 공화당 소속 흑인 후보 앨런 키스가 “노예의 후손들에겐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는 공약을 하자 오바마는 굴스비를 찾아 대응논리를 제시해 달라고 했다. 이후 굴스비는 오바마의 핵심 경제참모가 됐다. 그는 올해 초 미국에 금융위기가 터질 걸로 보고 투자은행 감독강화 등의 대책을 세워놓았다. 9월에 심각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오바마가 신속 대응한 것은 굴스비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굴스비는 예일대 학부과정을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같은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MIT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0대에 시카고대학 교수가 됐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하는 차세대 지도자 100인에도 들었다. 그는 부유층의 똑똑한 자녀가 몰려 있는 명문 사립고인 밀튼 아카데미에 다녔을 때부터 즉석 연설과 토론에 능했다. 예일과 MIT 재학 때 연설·토론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었다. 시카고대학에서 매년 개최하는 권위의 라트케-하만타쉬 토론회에도 빠짐없이 참가했다. 그는 결혼식 날에도 강의를 했을 정도로 성실하다고 한다. 철인 3종 경기를 즐기며, 코미디 연극도 하는 팔방미인으로 알려져 있다. 예일대 동기인 동갑내기 로빈 윈터스(39)와 1997년 결혼해 자녀 셋을 두고 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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