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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절 석 달 남았는데 귀향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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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4일 오후 중국 베이징 시내 서쪽의 서역 광장에서 다른 지역 출신 노동자들이 귀향 열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중국의 체감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춘절(설날)을 약 3개월 앞두고 미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근로자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베이징 서역=장세정 특파원]

14일 오후 베이징(北京) 시내 서쪽에 위치한 베이징 서역 광장. 이 역은 허난(河南)·산시(山西)·쓰촨(四川)과 허베이(河北) 서남부 지역의 농민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베이징으로 몰려드는 관문이었다.

그러나 요즘 이곳에는 거꾸로 베이징을 떠나는 근로자가 줄을 잇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중국의 경기가 빠르게 식어 가면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이 앞다퉈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용접공 류(劉·45)는 자기 몸집보다 큰 짐 꾸러미를 끙끙대며 들고 가다 역 광장에 내려놓고는 숨을 돌리고 있었다. 허베이성 이셴(易縣)으로 돌아간다는 그는 “베이징 시내 신축 건물 공사장에서 일했는데, 일감이 줄어 춘절(春節:중국의 설날)을 보내고 다시 일을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류는 “한 달에 3000위안(50여만원)을 벌어 아들 학비와 아내 생활비를 보내 줬는데 앞날이 막막하다”고 걱정했다.

허난성에서 일주일 전 일을 찾아 베이징에 왔다가 허탕 치고 돌아간다는 농민 궈(郭·38)의 사정도 딱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올림픽이 끝나고 일감이 오히려 크게 줄어 왕복 기차비(60위안)만 날리고 돌아간다”고 푸념했다.

◆3개월 이른 귀향 러시=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농민공(農民工)들이 춘제를 한 달가량 앞두고 귀향길에 오르기 시작하는 것은 중국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올해는 춘제를 3개월가량 앞둔 지난달 중순부터 조기 귀향이 시작됐다. 한파가 아직 몰아닥치지 않았는데도 공사가 중단되거나 공장 가동률이 떨어져 일감이 급속히 줄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들어 6만7000개의 중소기업이 부도났다.

베이징 경제 기술 개발구에서 LCD를 제조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120달러짜리 제품 단가가 4개월 만에 60달러로 폭락하면서 공장 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졌다”며 “하는 수 없이 수백 명의 근로자에게 월 최저임금(550위안)을 기준으로 3개월치를 지급하고 기약 없는 임시 휴가를 보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기침체로 수출 물량이 급감한 ‘중국의 공장’ 광둥(廣東)성 일대에선 조기 귀향 현상이 더 현저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외지 근로자가 500만 명을 넘는 둥관(東莞)은 완구·가구·의류·신발 공장이 연쇄 도산하면서 지난달 중순부터 이미 귀향이 시작됐다. 이들은 인근 광저우(廣州)역을 통해 후난(湖南)·장시(江西)·구이저우(貴州) 등지로 빠져나가고 있다.

상하이(上海)·저장(浙江)·장쑤(江蘇) 등 이른바 창장(長江)삼각주 공업지대도 사정은 비슷하다. 특히 영세 제조업체가 밀집한 원저우(溫州)와 닝보(寧波)의 기차역은 농촌으로 가는 기차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대기업도 감원·감봉 조치=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대기업 근로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토종 업체 치루이(奇瑞)차는 이미 신규 채용을 중단했고 최대 5000명을 감원할 것이라고 중국 언론은 전하고 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20∼30% 급락하면서 최대 부동산업체 완커(萬科)도 직원을 내보냈다.

고유가와 여객 감소로 인해 난팡(南方)·둥팡(東方)항공은 구조조정 방침을 밝혔다. 국유기업인 중국국가전력그룹은 경영진 연봉을 30% 삭감하기로 했다.

매출과 수요 부진으로 감산에 들어간 철강·석유화학 업계도 대규모 감원과 감봉 조치가 예고되고 있다. 가전제품 실적 악화로 최고경영자가 물러난 TCL그룹도 감원을 앞두고 있다.

웨이자닝(魏加寧) 국무원 발전연구중심 거시경제 연구부 부부장은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실직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경제시보는 “2억2600만 명 농민공의 10%만 실직해도 2200만 명이 일자리를 잃는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내년 성장률이 8% 선으로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며 “중국의 실물경기가 급속히 위축되면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또 한번 중국발 실물경기 충격파가 한국에 몰아닥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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