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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은 묻지 마라, 잠재력이 탁월하면 뽑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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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10면

취임 3년차를 맞은 서남표 KAIST 총장은 교수 테뉴어(정년 보장) 심사 강화, 100% 영어 강의, 심층면접을 통한 신입생 선발 등 다양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중앙포토

올해 KAIST 신입생 1차 모집에서 44명의 합격생을 배출한 대전과학고에는 눈에 띄는 합격생 3명이 있다. KAIST에서 요구하는 국어·영어·수학·과학 등의 내신점수가 전체 70명 중에서 50등 이하인 학생들이 선발된 것이다.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학교 진학부장인 윤마병 교사는 “충분한 잠재력을 지녔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면접 과정에서 발명 특허나 외국어, 토론 능력 등 특장점을 부각시킨 것이 주효한 것 같다”며 “내신점수가 30등 이내에 들면서도 KAIST 입시에 불합격한 학생도 4명이나 있다”고 말했다.

MB 대입 정책의 모델로 떠오른 KAIST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지난해부터 대폭 변경된 KAIST 선발 방식 때문이다. KAIST는 서남표 총장의 주도로 인성과 창의력·리더십 등 잠재력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선발 제도를 2008학년도 입시부터 도입했다. 서 총장은 면접심사 배점을 대폭 높임으로써 서류전형 점수는 낮더라도 어느 한 분야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학생이 선발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입시개혁 초반엔 반대도 많았다.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면접을 통해 학생을 선발함으로써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14일 KAIST에서 만난 이광형 교무처장은 “입시개혁 초반 많은 교수들이 ‘학부모 항의 등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며 걱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교수들에게 ‘이 제도를 도입해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무엇이냐. 만약 소송이라면 학생선발위원장인 내가 책임지고 감옥에 갈 테니 따라 달라’고 설득해야 했다”고 했다.

지난해 KAIST 최종 합격자 발표 결과 내신점수도 좋고 각종 수상 경력도 있는 학생들이 떨어지자 “불합격한 이유를 설명해 달라”며 학교에 찾아온 학부모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는 면접심사 비중을 지난해보다 훨씬 높였는데도 “전형 결과에 항의하는 학부모 숫자가 크게 줄었다”고 입학본부 측은 설명했다. 서 총장은 지난 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지난해 학부모들의 소송을 각오하고 면접 위주의 입학전형을 도입했지만 올해는 지원자가 더 늘었다”며 “재주 있는 학생, 다이아몬드가 될 원석을 찾는 데는 성적보다 면접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KAIST는 ‘한국과학기술원법’이라는 특별법으로 설립된 덕에 대학 운영과 학생 선발에 있어 교육당국의 간섭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나 KAIST 입시 역시 내신성적과 올림피아드 입상 등 시험 위주로 흐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교무처장은 “서 총장 부임 후 기존의 틀을 깨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매년 KAIST가 뽑는 신입생은 850명 안팎이다. 이 중 750여 명을 뽑는 1차 모집에서는 수능점수를 반영하지 않는다. 지원자들은 교사 추천서와 고등학교 성적 자료, 영어 성적, 각종 대회 입상 경력 등 우수성 입증 자료를 통한 서류전형에서 2배수로 압축된다. 이후 그룹토의와 개인면접, 개인별 과제 발표 등의 심층 면접시험을 보게 된다.

KAIST는 면접전형에 전체 교직원 450명의 4분의 1 수준인 100여 명을 투입할 정도로 신입생 선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1500여 명의 지원자에 대한 면접심사는 꼬박 3일이 걸렸다. KAIST 측은 “면접위원에 따라 후하거나 박한 점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정규화(normalization)’라는 통계적 기법을 통해 편차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2차 면접시험까지 모두 마무리한 다음에는 면접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선발위원 18명이 한자리에 모여 1차 서류심사와 2차 면접시험 점수를 두고 최종 선발을 결정한다.

윤달수 KAIST 입학지원팀장은 “서류 점수와 면접 점수를 단순히 합산하는 게 아니라 지원자의 잠재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방식”이라며 “전체 점수는 높지 않더라도 어느 한 분야에서 특출하게 뛰어난 인재를 뽑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KAIST는 내년 입시설명회부터 리더십·창의성·사회성 등 선발 기준만 밝히고 구체적 전형 방식을 학생과 학부모·학교에 알리지 않는 ‘무요강 입시’를 실시할 방침이다.

지난주 서 총장은 청와대에서 정진곤 교육과학문화수석을 만나 교원 35명 확대와 학부생(한 학년 기준)을 1000명까지 늘리는 방안 등 KAIST의 현안을 논의했다. KAIST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서 총장과 정 수석은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강화해 나간다는 원칙에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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