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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年브리핑>4.출판 - 우리것 찾기 古典열풍 지속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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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옛것을 통해 새로운 지혜를 닦는 것을 말한다.정축년(丁丑年)에 들어선 우리 출판계는 온고지신의 묘수찾기에 분주할 것으로 보인다.20세기를 마감하는 대전환기 속에서 분망했던 근·현대사를 냉정히 짚어보고 21세기의 올바른 좌표를 모색한다는 뜻에서다.이같은 예측은 중앙일보가 새해를 맞아 대표적 단행본 출판사 30여곳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무엇보다 연초부터‘고전(古典)열풍’이 거세게 불어닥칠 전망이다.여러 출판사가 고전 완역 혹은 재발굴이라는 청사진을 그려놓았다.특히 한국·중국등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우선 솔출판사는 이달부터 ‘나랏말 ’이란 타이틀로 새총서를 시작한다.‘다산문선’‘열하일기’‘성호사설’등 1차분 5권의 마무리에 들어갔다.아울러 ‘신증동국여지승람’‘완당전집’등 지난해 착수한 민족문화추진회의 ‘고전국역총서’에도 역점을 둘 방침이다.

동문선은 ‘완역상주 한전대계’(完譯詳註 漢典大系)를 매달 1권씩 펴낸다.철저한 주석·해설을 곁들여 중국고전의 결정판을 만들겠다는 구상.한(漢)나라때 유향이 편찬한 훈계적 전설집 ‘설원’(說苑)이 1번타자로 나온다.98년 초반분까지 원고가 완성된 상태.이밖에 나남출판은 ‘대학’‘중용’등을 비롯한 동양고전 번역을 시리즈로 이어가며 푸른숲 또한 동·서양 고전을 선별,완역출간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지난해 하반기 ‘동·서양 사상및 한국사상 1백50선’을 시작한 홍익출판사도 ‘열자’‘근사록’등을 필두로 올안에 20여권을 펴내며,살림출판사의 중국문화총서와 예문서원의 동양학 원전주석도 활기를 더해간다. 이같은 동양고전 열기는 서구의 과학적 합리주의와 물질적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해석된다.전통 깊은 동양의 사유관으로 한계에 부닥친 서구의 세계관을 처음부터 돌아보자는 취지들이다.특히 60년대 이후 줄곧 성장·발전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의 행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담고 있다.

홍익출판사 이승용대표는 “산업화 주역인 기성세대가 20∼30대들에게 진정한 교육의 시간을 마련하지 못해 사회가 정신적 공황에 빠져들었다”며 “동양고전들은 가치관 혼란으로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출판계 일각에선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저작권료 부담이 없는 고전번역은 지난해 7월 개정된 저작권법을 손쉽게 피해가려는 안일한 발상이라는 것.더욱이 기존 번역물과 다소 중복출판이 불가피한 까닭에 내용·체제 모두 종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기획력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우리’‘우리 것’을 찾는 작업도 왕성해진다.사계절출판사의‘한국문화총서’가 대표적인 경우로 4월초에 ‘한국문화와 한국인’‘조선시대의 유교문화’등 4권이 선보인다.소장학자들이 학제간 연구를 통해 우리 문화를 총체적으로 점검한다.

디자인하우스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 총서를 연말께 컬러판으로 내놓는다.향후 5년동안 1백권을 발간,한국판 갈리마르 총서에 도전하고 있다.한길사의 ‘이야기 한국사’도 눈길을 끄는 기획.재야사학자 이이화씨가 모두 24권 속에 우리의 역사를 풀어놓을 작정인데 하반기중 고대사부분 3권이 먼저 나온다.

또한 지난해 독서계를 주도했던 인문교양서 출간이 정착기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역사는 물론 철학·인류학·심리학등의 독자 파고들기가 주제·분야·저자별로 폭과 깊이가 더욱 성숙할 것으로 점쳐진다.▶미래 문화의 위상을 조망할 민음사의 ‘21세기 문화총서’▶정보사회의 허실을 비판적으로 접근할 나남출판의 ‘디지털 사이언스’▶급변하는 사회변동을 문화의 틀로 점검할 한울의 ‘오늘의 문화연구’▶다양한 문화현상을 문고에 담은 동문선의 ‘문화총서’등이 새로운 시리즈로 독자들에게 다가선다.

이와 함께 경기침체와 대선정국등 어지러운 사회상,그리고 세기말에 대한 불안이 겹치면서 명상서적·종교서적·UFO등 외계문명과의 교류를 다룬 책들의 인기와 컴퓨터·어학을 중심으로 한 실용서들의 약진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길벗출판사 이종원대표는“불안정한 고용에 따른 자기계발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실용서들의 장세(場勢)가 여전히 강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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