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오바마에 구애하는 部族型 인간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호 15면

만약 개인보다 가문과 집단이 먼저고, ‘나’보다 ‘우리’가 더 익숙하다면 도시화가 되기 이전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전근대적 사고가 현대인의 개인주의적 사고보다 꼭 열등하며 나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가문이나 집단의 영광을 위해 내 한 몸 희생하자는 이들에게서 공동체에 대한 매우 고결한 도덕적 품성을 관찰할 때도 많다. 소속한 집단에 대한 책임감은커녕 가까운 이들의 돈을 떼어먹고 외국으로 도망가는 질 나쁜 코스모폴리탄적 유목민보다 차라리 전근대적 사고방식의 부족형(部族型) 인간이 나을 수도 있다.

반대로 학연·지연 등을 따져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타 집단과 맞서는 배타성, 돈과 권력의 주위를 맴돌며 다니는 후줄근한 친지·동창들의 구차함, 내 가족만 챙기는 탐욕스러운 가족이기주의 등은 타락한 전근대적 부족형 인간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만 중요시하고 소속된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나 죄의식이 없는 포스트모던형 인간과, 나와 남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은 선사시대형 혹은 부족형 인간이 한 집안, 한 사회에 동거하고 있으니 당연히 갈등과 분란이 생길 것이다. 건전하지 못한 포스트모던형 인간은 윤리의식 없이 욕망에 따라 흐느적대고, 광기에 휩싸인 선사시대형 인간은 나와 너, 집단의 구별을 모른 채 덩어리로 뭉쳐 다니며 폭력을 휘두른다. 연애 놀음에 목숨 거는 자녀와 가문의 광영에만 목매다는 부모가 지지고 볶는 진부한 드라마나, 김일성 일가에 대를 이어 충성하자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으로 사는 북한 지도층의 세기말적 부패도 이런 두 인간 유형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겠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집단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자아(ego)’와, 집단의 무의식이나 의식과 분리되어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의식의 탄생을 자기를 찾는 개성화 과정(Individuation)의 첫 단계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집단의 절대적 권력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이 집단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도 벗어 던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식·돈·권력이 모두 충분한데도 ‘참 자기’를 찾지 못한 채 집단에 부화뇌동하는 이들이 많다. 정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고 추진할 수 있는 자아가 건강하게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당선되었다고 혈육의 동질감을 느낀 케냐 국민은 무척 흥분했지만, 정작 오바마는 인종과는 상관없이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통합을 냉정하게 강조했다.

그런 오바마에게 인맥을 동원해 보겠다는 이들이나, 자기와 상관없는 연예인이나 스포츠맨들의 사생활에 댓글 달고 간섭하는 이들이나, 인생관과 성향은 다르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의 부족형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상당히 비슷하다. 부족형 인간은 집단 안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헌신하지만, 바깥 집단 사람들에게는 아주 무서운 일도 저지른다. 조직폭력배가 자기들끼리는 가슴 찡한 의리를 나누면서 남들에겐 거리낌 없이 잔인한 행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쪼록 곳곳의 부족형 인간들이 하루빨리 개화해 ‘우리’뿐 아니라 ‘당신들’도 함께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길 바랄 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