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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칸 영화제 상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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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나는 권위적인 영화를 가장 싫어한다. 두 시간 가량의 이야기 속에 관객을 가두는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관객에게 삶 자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자유와 상상력의 여지를 많이 주는 영화가 좋다.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홍상수 감독은 이런 영화를 만드는 굉장히 드문 감독이고, 가장 훌륭한 현역 감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이하 '여자는…')의 기자회견에서 공동 제작사이자 배급사인 MK2의 대표 마린 카미츠가 한 말이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는 MK2는 1982년 터키 감독 일마즈 귀니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욜'을 비롯, 이탈리아 타비아니형제, 프랑스의 장 뤼크 고다르와 알랭 레네, 폴란드 출신의 키에슬롭스키, 이란의 키아로스타미 등 예술영화를 주로 제작해왔다. 제작자가 자신의 영화를 자랑하는 건 당연한 일 같지만, 이런 그의 말은 '여자는…'에 대한 프랑스 현지의 시선을 짐작하게 한다.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출연한 유지태.성현아.김태우(왼쪽부터)가 17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앞서 상영된 '올드 보이'가 대중적 관심을 크게 모은 데 비해 17일 열린 '여자는…'의 기자회견과 공식 상영은 차분한 편이었다. 전날의 기자 시사에서도 두 남자 주인공 문호와 헌준이 중국집 여종업원에게 수작을 거는 장면에서부터 꾸준히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모든 객석에서 동시에 흘러나온 웃음은 아니었다.

현지 기자들은 한국에서도 그랬듯이 프랑스 시인 아라공의 시구에서 따온 영화 제목부터 궁금해했다. 회견장에서 홍감독은 "파리의 책방에서 본 구절인데 마치 불교의 화두처럼 계속 머리에 떠올랐다. 과거의 여자인 선화를 불러내 세 사람이 만난 뒤 마지막 장면에서는 문호 혼자 길거리에 남는다. 선화는 어디로 갔을까. 미래로 사라진 건 아닐까. 이렇게 과거와 미래가 다시 연결되는 느낌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제목 때문에 영화가 기억과 사랑뿐 아니라 남녀 사이의 힘 관계에 대한 얘기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감독은 "그보다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 우리가 일상에서 친숙한 감정과 상황을 조금씩 비틀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달리 해보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비틀어보기'에 대한 대중적 반응이 다소 냉랭하고 혼돈스러운 것과 달리 프랑스 언론의 보도는 홍감독을 작가주의 감독으로 환대하는 분위기가 뚜렷했다. 르몽드는 이달초 홍감독에 대한 특집기사를 실었고, 리베라시용은 18일자에 두 페이지에 걸쳐 다뤘다. 이 신문의 영화평은 '불확정성의 예술(l'art de la suspension)'이라는 제목으로 감독을 프랑스의 로베르 브레송에 비유했다.

인터뷰 기사에서는 롱테이크를 즐겨 쓰고 촬영당일에야 최종 대본을 나눠주는 감독의 독특한 작업방식을 상세히 소개했다. 프랑스 측 프로듀서인 피에르 리시엥은 이런 방식이 혹 즉흥적인 것으로 오해받을 것을 우려했는지 "촬영된 장면들은 사전에 받아 본 30~40쪽의 시놉시스의 설정과 거의 일치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그는 "감독과는 데뷔작을 보고 너무 좋아 만나게 됐고, 그의 작업에 도움을 주고 싶어 프랑스와 공동 제작을 주선했다"고 소개했다.

'여자는…'은 오는 19일 프랑스 전역의 40여개 극장에서 개봉한다. 마린 카미츠는 "한국과의 공동 제작은 처음인데, 제작 과정과 인간 관계나 작품의 수준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다시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칸(프랑스)=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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