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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秋史 한글 편지' 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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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가 1828년 마흔 세 살 때 아내 연안 이씨에게 쓴 한글 편지(上). 추사의 제자였던 소치 허유(1809~92)가 그린 추사 김정희의 초상화.

우리나라 사람이 으뜸 서예가로 꼽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한글도 썼을까. 문사철(文史哲) 시서화(詩書畵)를 두루 갖춘 대학자가 한문이 휩쓸던 조선시대에 아녀자끼리 통하던 한글 서체를 남겼을까 궁금하다. 칠십 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 내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면서 완벽한 글씨 쓰기를 갈망했던 추사가 글 종류를 가렸을 리 없다. 추사가 아내와 며느리에게 보낸 편지 속에 추사 한글체가 오롯이 담겨 있다.

25일부터 6월 27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추사 한글 편지'는 추사가 남긴 한글체를 살펴볼 수 있는 드문 전시다. 추사가 30대부터 50대까지 30년에 걸쳐 서울과 예산을 중심으로 부임지와 유배지였던 대구.평양.고금도.제주도 등지에서 부인 연안 이씨와 며느리 풍천 임씨에게 쓴 40통의 편지 전부가 공개된다.

추사의 한글편지를 모아 연구해온 멱남서당(대표 김일근 건국대 명예교수) 소장품이 바탕이 된 이 편지들은 가까운 집안 식구에게 보낸 개인글이란 특성 때문에 추사 개인의 성품과 일상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매양 잘 있노라 하오시나 말씀이 미덥지 아니하오니 염려만 무궁하오며, 부디 당신 한몸으로만 알지 마옵시고 이천리 해외에 있는 마음을 생각해서 섭생을 잘 하시기 바라오며…." "서울서 내려온 장맛이 다 소금 꽃이 피어 쓰고 짜서…."(1841년 제주도에서 부인에게)

유배된 낯선 땅에서 홀로 병치레에 외로운 마음을 달래던 추사는 병석에 누운 부인을 걱정하는 지아비의 정을 애틋하게 표현하는가 하면, 먹을거리 입을거리에 까다로운 성미를 드러내기도 한다. 아들이 손자를 보자 그 돌잔치를 걱정하고, 회갑과 제사 등 가족 대소사를 시시콜콜 챙기는 경주 김씨 집안의 종손 추사를 발견하는 맛이 쏠쏠하다.

추사체와 추사 한글을 비교하는 재미도 크다. 당대에 한글체의 전형으로 자리잡은 궁체(宮體)에서는 글자의 중심이 오른쪽에 있었지만 추사는 정중앙에 두어 한글 창제 당시의 원형에 더 가까웠다. 또 한문 추사체와 같이 개성넘치는 필법을 구사해 율동적이고 먹색도 들쭉날쭉이며 굵고 가늘고 굽고 곧은 필획의 다양함이 "잘되고 못되고를 가리지 않는다"는 추사체의 경지를 읽게 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전시과장은 "정방형인 한글 자모 결구와 한글 특유의 점획을 뛰어난 공간 경영으로 조합해 일상의 편지글을 예술로 끌어올린 추사의 기와 흥이 손에 잡힐 듯하다"고 말했다.

6월 5일 오후 1시부터 서예박물관 문화사랑방에서는 추사의 한글편지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린다. 전시기간 중 매주 토.일요일에는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서예박물관 체험교실 '우리 그림 그리기'가 이어진다. 02-580-1511(www.sac.or.kr).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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