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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풍목 <風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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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동지 섣달 긴긴 밤이 짧기만 한 것은…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이 일듯/어머니 가슴에는 물결만 높네”라는 대중가요 ‘모정의 세월’은 과거 술자리에서 그리운 어머니를 떠올리며 부르던 노래다. 자식들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이 일듯’이라고 표현했다.

노래는 바람과 나무를 어머니의 내리사랑에 빗댔지만 과거 동양의 고전에서는 경우가 다소 다르다. 『한시외전(韓詩外傳)』이라는 책에 나오는 바람과 나무는 이렇다. “나무는 조용해지려고 애쓰지만 바람이 멈추지를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는 것. 다음 문장은 “자식이 모시려 해도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子欲養而親不待)”고 했다.

삶과 죽음으로 갈라지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만큼 애절함이 더 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지 못한 자식의 후회는 많은 문인이 즐겨 쓰는 소재였다.

『한시외전』의 이 말들은 일단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자식의 진한 회한을 표현하는 구절로 자리 잡았다. 때로는 ‘풍목지비(風木之悲)’ 또는 ‘풍수지탄(風樹之嘆)’ 등의 성어식 표현으로도 쓰인다.

그러나 앞 구절 “나무는 조용해지려고…”는 자식의 못 다한 효심에 앞서 상황이 제 자신의 뜻과는 달리 발전하는 경우를 말하는 데 더 쓰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반대로 치닫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섭섭함이다.

세계적 경제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요즘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밤낮없이 걱정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서민은 서민대로 좀체 찾아 보기 힘든 경제위기 앞에서 노심초사다. 갈 길은 먼데 날이 저무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의 형국이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정치권 바람은 불어댄다. 특히 야당이 강만수 장관의 ‘헌법재판소 접촉’ 발언의 시비를 따지려면 조용히 따질 일이다. 피켓을 들고 국회 밖에서 시위를 벌이면서 ‘한 건 잡았다’식으로 사안을 몰고 가는 것은 정략적인 행동으로만 비친다.

정부와 여당이 곱지 않더라도 지금은 집중이 필요하다. 정치권의 화합은 그래서 중요하다. 야당은 그저 정략을 위한 것이라면 바람을 만들지 말 일이다. 고요함이 필요한 한국이란 나무에 괜한 바람만 불어대면 허풍(虛風)쟁이 취급받는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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