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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구석구석 살핀 오바마 “부시 내외의 따뜻한 환대 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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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0일 오후 1시50분(현지시간) 백악관 남쪽 현관 앞. 멈춰선 검은 색 리무진 승용차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중 나온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악수하며 왼손으로 부시 대통령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새 퍼스트 레이디가 될 미셸 오바마는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와 가볍게 뺨을 맞췄다. 그리고 네 사람은 백악관 안으로 나란히 걸어 들어갔다.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전에 현직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을 사전에 둘러보는 일은 4년마다 있어 왔다. 그러나 올해는 그 의미가 각별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백악관 안팎을 활보하는 모습은 미국인들에게 ‘민주주의 발전의 영광스러운 의식’으로 비춰졌다. 미 전역의 공공장소에서 생방송 중인 TV 앞에는 인파가 몰렸다.

부시는 로즈가든 옆 복도를 지나 오바마를 대통령 집무실 ‘오벌 오피스’로 안내했다. 그리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쓰던 책상을 비롯해 역사가 담긴 물건들을 보여줬다. 같은 시각, 로라는 미셸에게 케네디의 아이들이 사용하던 방을 포함해 백악관 본관의 방 33개를 일일이 안내했다. 이어 백악관에서 딸아이 키우는 법을 미셸에게 전수했다.

이날 부시와 오바마는 오벌 오피스에서 국내외 현안에 대해 배석자 없이 회동했다.

부시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매우 건설적인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밝혔다. 오바마 측은 “당면한 경제 위기를 포함해 폭넓은 논의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뉴욕 타임스(NYT)는 두 사람의 회동에서 오바마는 미 자동차업계에 대한 즉각적인 긴급지원을 촉구했으며, 부시는 콜롬비아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찬성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는 “부시 대통령 내외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측근들에겐 “사무실이 아주 좋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두 딸 말리아와 사샤의 교육을 위해 워싱턴의 유명 사립학교인 조지타운 데이스쿨을 둘러본 뒤 집이 있는 시카고로 되돌아갔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당선인 내외가 백악관과의 역사적인 상견례에 걸린 시간은 모두 1시간5분이었다. 이전까지 백악관은 흑인에게 한 번도 주인 자리를 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손님으로 방문하는 것조차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였던 노예제 폐지 운동가 프레데릭 더글러스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악관 측으로부터 출입을 거절당했다가 뒤늦게 이를 안 링컨이 불러 들어갈 수 있었다. 1901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흑인작가 부터 워싱턴을 백악관 만찬에 초대하자 미국 사회에선 “금기를 깨뜨린 폭거”란 비판이 쏟아졌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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