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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명‘영혼의 소리’로 희망을 노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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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올해 10살인 이강영 양은 태어날 때 몸무게가 다른 아이의 반도 안 되는 1.32kg에 불과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세상 빛을 보자마자 기관지 절개 수술을 했다.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것은 물론, 뇌병변1급에 지적장애까지 겹쳤다. 하지만, 그에겐 무대에 선다는 꿈이 있었다. 그는 11일 그 꿈을 이뤘다. 이날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정기공연에서 당당히 솔로 가수로 선 것이다. 마이크를 가까이 대도 잘 들리지 않는 가느다란 목소리였지만 온 힘을 다해 불렀다.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단원들이 11일 호암아트홀에서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을 위한 리허설을 하고 있다. 단원들이 노래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공연 중엔 사진 촬영을 하지 않고 대신 리허설 장면만 찍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날 이 양을 비롯해 다섯 살부터 마흔네 살에 이르는 36명의 단원은 10여 곡의 노래를 불렀다. 앙코르도 받았다. 뇌병변에 성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희귀병 ‘누난 증후군’도 앓고 있는 다섯 살 최민기 어린이도 또랑또랑하게 노래를 불렀다. 리허설 때는 무대를 마구 휘젓고 다녔지만 공연 때는 의젓하게 자기 몫을 했다.

그렇게 ‘영혼의 소리로’ 2008년 정기공연이 막을 내렸다. 창립 10주년 기념 공연이기도 했다. 이 합창단은 지난 10년 동안 255회의 공연을 해왔다. 병원을 찾아 환자들 앞에서 공연하기도 했고, 미국과 유럽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내년 6월엔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안톤 브루크너 국제합창대회’에 초청까지 받았다. 장애인합창단이 이 대회에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공연을 마친 강영 양에게 “노래하는 게 좋으냐”라고 물어봤다. 그는 대답 대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10년 근속 단원인 박지혜(42)씨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너무너무 좋다”라며 함박웃음을 짓자, 곁에 있던 홀트아동복지회 이창신 사회복지사가 “노래를 하면 치유가 많이 된다”라고 귀띔했다.

지휘자 박제응(43·사진)씨는 노래를 하는 이들은 물론, 듣는 사람들도 몸과 마음의 병이 치유된다고 믿는다. “뇌종양을 앓고 있던 환자가 공연 뒤 다가와 ‘수술에 대한 희망도 버렸었는데 마음을 바꿨다’라고 하더군요. 열심히 노래하는 아이들을 보며 삶에 대한 희망을 되찾았다고요.”

여기까지 온 게 박씨는 대견하기 그지없다. 1주일에 3번 자원봉사로 아이를 가르치는 건 쉽지 않았다. 한 곡을 가르치는 데 평균 한 달이 걸렸다. 공연을 하다 아이가 갑자기 쓰러지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에 마음 편한 날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다, 노래를 가르치면서 내가 배우는 게 더 많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이탈리아에서 교수 자리를 잡았지만, 가세가 기울면서 포기하고 귀국해야 했다.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이들을 만났다. 대학 시절 후원했던 장애아 혜경이를 우연히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만난 게 계기였다. 의학적으로 볼 때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크다는 의사들의 말과는 달리 음악을 들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혜경이를 보고 음악치료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고, 합창단의 지휘를 맡게 된 것이다.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수백 명 관중이 지켜보는 무대에 올라 함께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이들이 부르는 건 그냥 노래가 아니에요. 삶의 희망이지요. 제 힘이 닿을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희망의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전수진 기자 ,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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