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살인 이강영 양은 태어날 때 몸무게가 다른 아이의 반도 안 되는 1.32kg에 불과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세상 빛을 보자마자 기관지 절개 수술을 했다.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것은 물론, 뇌병변1급에 지적장애까지 겹쳤다. 하지만, 그에겐 무대에 선다는 꿈이 있었다. 그는 11일 그 꿈을 이뤘다. 이날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정기공연에서 당당히 솔로 가수로 선 것이다. 마이크를 가까이 대도 잘 들리지 않는 가느다란 목소리였지만 온 힘을 다해 불렀다.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단원들이 11일 호암아트홀에서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을 위한 리허설을 하고 있다. 단원들이 노래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공연 중엔 사진 촬영을 하지 않고 대신 리허설 장면만 찍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날 이 양을 비롯해 다섯 살부터 마흔네 살에 이르는 36명의 단원은 10여 곡의 노래를 불렀다. 앙코르도 받았다. 뇌병변에 성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희귀병 ‘누난 증후군’도 앓고 있는 다섯 살 최민기 어린이도 또랑또랑하게 노래를 불렀다. 리허설 때는 무대를 마구 휘젓고 다녔지만 공연 때는 의젓하게 자기 몫을 했다.
그렇게 ‘영혼의 소리로’ 2008년 정기공연이 막을 내렸다. 창립 10주년 기념 공연이기도 했다. 이 합창단은 지난 10년 동안 255회의 공연을 해왔다. 병원을 찾아 환자들 앞에서 공연하기도 했고, 미국과 유럽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내년 6월엔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안톤 브루크너 국제합창대회’에 초청까지 받았다. 장애인합창단이 이 대회에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공연을 마친 강영 양에게 “노래하는 게 좋으냐”라고 물어봤다. 그는 대답 대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10년 근속 단원인 박지혜(42)씨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너무너무 좋다”라며 함박웃음을 짓자, 곁에 있던 홀트아동복지회 이창신 사회복지사가 “노래를 하면 치유가 많이 된다”라고 귀띔했다.
여기까지 온 게 박씨는 대견하기 그지없다. 1주일에 3번 자원봉사로 아이를 가르치는 건 쉽지 않았다. 한 곡을 가르치는 데 평균 한 달이 걸렸다. 공연을 하다 아이가 갑자기 쓰러지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에 마음 편한 날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다, 노래를 가르치면서 내가 배우는 게 더 많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이탈리아에서 교수 자리를 잡았지만, 가세가 기울면서 포기하고 귀국해야 했다.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이들을 만났다. 대학 시절 후원했던 장애아 혜경이를 우연히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만난 게 계기였다. 의학적으로 볼 때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크다는 의사들의 말과는 달리 음악을 들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혜경이를 보고 음악치료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고, 합창단의 지휘를 맡게 된 것이다.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수백 명 관중이 지켜보는 무대에 올라 함께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이들이 부르는 건 그냥 노래가 아니에요. 삶의 희망이지요. 제 힘이 닿을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희망의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전수진 기자
[J-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