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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찮은 일본의 유엔 안보리 행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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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외교 공작과 물밑 거래가 판치는 국제무대에서 이렇듯 진실이 파묻히는 건 흔한 일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 시 튀어나온 기권표의 정체도 그중 하나다. 전말은 이렇다. 2006년 10월 후보 6명을 놓고 유엔 안보리 회원국의 막판 4차 투표가 실시됐다. 대세는 반 총장으로 기울어 찬성 14표, 기권 1표로 당선이 확정됐다. 새 총장의 탄생 자체가 큰 뉴스였지만 어느 나라가 기권표를 던짐으로써 끝까지 반대했는지도 관심사였다. “한 섬나라가 반대했다”는 등 미확인 보도가 쏟아졌다. 한국 외교관들은 머리를 맞대고 따져봤지만 막연한 심증만 있을 뿐 어느 나라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1년 뒤 묘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지난해 11월 존 볼턴 전 유엔 미국대사가 『항복은 선택이 아니다(Surrender is not an option)』란 책을 내면서 “반 총장에 반대한 나라는 일본”이라고 지목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 측이 펄쩍 뛰자 그는 기자회견에서 “반론이 있는 나라는 (나처럼) 책을 쓰면 될 것”이라고 면박까지 줬다.

이 뉴스가 국내로 전해지자 인터넷에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일본인의 근성’이라는 식의 악플이 넘쳐났다. 그러나 일각에선 다른 이야기도 나왔다. 반 총장 당선을 위해 뛰었던 한국 외교관 중에는 “일본 아닌 제3국인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 있다. 반 총장 주변에서는 다른 나라를 지목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일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접지 않는다. 반 총장이 당선됨으로써 한국의 외교력과 국력이 강해지는 걸 원치 않을 거란 믿음에서다. 특히 일본은 신속한 남북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시각이 넓게 퍼져 있다. 실제로 헨리 키신저는 자신의 저서에서 ‘중국과 일본은 한국의 조속한 통일을 원치 않는다’며 ‘특히 통일 한국이 북한의 핵으로 무장한다면 더욱 반대할 것’이란 논리를 펴고 있다.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꼭 일본인이 한국을 미워해서가 아니다. 어느 국민이 바로 옆에 핵으로 무장한 나라가 버티고 있기를 바라겠는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런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려고 집요하게 노력 중이라는 거다. 일본은 2년 전 아프리카 등의 반대로 상임이사국이 될 결정적 기회를 놓쳤다. 이 때문에 일본 내부에선 한때 안보리 진출 비관론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 외교관들은 꺼져가던 불씨를 새로 지피기 위해 전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다 한다. 특히 지난달 이란을 누르고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당선되자 이를 새로운 계기로 삼을 태세다. 이를 두고 요미우리신문은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할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사설을 통해 강하게 촉구했다.

만약 남한과 북한이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치자. 이럴 때 일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유엔이라면 과연 한반도 통일에 적극적으로 나설까. 온 세계의 이목이 버락 오바마 당선에 쏠리고 있는 요즘, 조용하면서도 중차대한 유엔 내 흐름도 눈여겨봐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남정호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