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믿거나 말거나 96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96년을 결산하는 좌담회를 열었다.올해는 놀랍고 신기한 일들이 많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먼저 북한문제 담당이 말했다.
“놀랍고 신기한 이야기의 압권(壓卷)은 한가족 17명의 북한탈출이겠지요.두만강에서 홍콩에 이르는 대륙 종단의 대탈출극은 정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감동의 드라마였습니다.” 그러나 정치평론가들은 탈북기가 놀라운 일이기는 하나 신기한 일은 아니라고 주장했다.잠수함을 침투시키고 되레 남쪽보고 사과하라는 북심(北心)도 같은 범주라고 말한다.
“놀랍고 신기한 일의 단연 으뜸은 법정에 선 두명의 죄수(복을 입은 전직 대통령)아니겠습니까.” “그러나 4.11총선거에서 신한국당이 과반수를 훨씬 밑도는 1백39석을 얻고도 기어이과반수 의석을 채우게 된 이야기도 신기하지요.먼저 무소속과 민주당 의원을 빼오고 이어 자민련 의원을 빼오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이.빼오기'에 의한 의석 개편은 정당연합이나 정책공조를 예상한 모든 정치분석가들의 의표(意表)를 찌른 기발한 착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이런 기발한 착상은 연말의 안기부법.노동법 기습처리로 이어져 한국 정치의 역동성(力動性)을 한단계 격상시켰다고 평가됩니다.” “DJP 연합전선도 신기합니다.서로 의견이 다르던 내각제 개헌에 어떻게 말을 맞췄는지 정말 신통합니다.” 이때 한 시인이 신한국당 사정을 시로 읊었다.
.신한국 구룡(九龍)이 나니 일마다 뒤틀린다/뿌리도 깊지 않고 꽃도 열매도 없다/샘이 얕으니 바다에 갈 것도 없다/단지 김심불패(金心不敗)의 장담만 믿을 뿐이네'.
“김심불패가 무슨 말입니까.” “김심이 찍은 사람은 불패한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경제담당도 시로 한 수 읊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강가에 앉아 울었다/바빌론의 유수(幽囚)도 우리의 슬픔을 당하진 못하리/사상 최대의 국제수지 적자를 내고/멕시코를 닮아간다는 비아냥/오이시디 가입도 좋지만/추락하는 한국경제 날개도 없구나'.
다음은 사회평론가들이 나섰다.올해의 놀랍고 신기한 일은 아무래도.흔들리는 무엇무엇'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어린 소녀들이 흔들립니다.여고생.여중생들이 학교에서 아기를낳습니다.아내들이 흔들립니다.애인을 만들어야 사람 축에 든다고설렙니다.윤락전선에도 나섭니다.아버지가 흔들립니다.명예퇴직 바람으로 일찍 일손을 놓고 망연자실합니다.이성(理 性)이 흔들립니다.전생을 안다고 설치는 사람이 많습니다.미래에 희망을 가질수 없기에 과거에 애써 집착하게 되는 걸까요.제 생각에 올해의색깔은 실망(失望)입니다.그러니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사람은행복했을 겁니다.실망할 일이 없 기 때문입니다.” 좌담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몇몇 전문가들은 올해의 놀랍고 신기한 이야기들을.믿거나 말거나(Believe It or Not)'에 수록하자고 했다.
“그건 그렇고 크리스천이 1천만,불교도가 1천만,유학(儒學)군자가 1천만인데 왜 이리 사회가 어지러울까요.” “한국 인구가 얼맙니까.” “4천만 아닙니까.” “그러면.나머지'1천만이사기꾼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수석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