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의 공포영화‘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엽기적인 살인과 식인 행위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살인마 3형제는 원래 시골의 소 도살장에서 일하던 순진한 인물. 시대가 변하고 자신들의 기술이 쓸모 없어지자 그 분노와 상실감을 이기지 못해 무자비하게 인간을 도살한다. B급 영화인 이 작품이 평단의 호평을 받은 것도 이런 사회의식 때문이다. 당시 1차 오일쇼크로 미국에는 실업이 만연했다. 실업은 일시적인 함정이 아니라 끔찍한 가위눌림을 동반하는 ‘헤어날 수 없는 덫’으로 인식됐다.
경제학 교과서는 대량 실업을 가장 위험한 경제 현상으로 간주한다. 자연재해나 전쟁보다 훨씬 파괴적이다. 삶이 무너지고 가정은 파괴된다. 홈스와 레이히의 보고서(67년)에 따르면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 가운데 직장에서의 해고는 8위에 해당한다.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배우자나 가족의 죽음, 이혼, 감옥살이뿐이다. 해고에 따른 후유증을 조사한 보고서도 있다. 잃는 것은 임금·안정감·자신감·꿈·가족관계·사회적 지위 등 13가지나 된다. 대신 얻는 것은 빚·알코올·부부싸움·고독감·권위 상실 등 12가지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해고 광풍이 일고 있다. 내년 미국의 실업률은 82년 불황(10.8%)과 90년 불황(7.8%)의 중간쯤으로 추산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해고를 알리는 뉴스가 지면을 채우고, 권고사직·명예퇴직이란 단어가 초겨울 칼바람보다 스산하다. 그렇다고 대량 실업을 막기 위한 뾰쪽한 해법은 없다. 딱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공공투자를 확 늘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정규직·비정규직이 서로 양보해 견뎌 나가는 길이다. 어느 때보다 노·사·정 대타협이 절실하다. 여기저기서 마구 전기톱이 춤춰서야 되겠는가. 실업마저 유머로 삼은 레이건식 여유가 부럽다. 우리도 조금씩 양보할 순 없을까.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