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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28일개봉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열성팬들에겐.보증수표'같은 감독들이 있다.
28일 동숭시네마텍에서 개봉되는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원제 The Draughtman's Contract.화가의 계약.82년작)의 영국감독 피터 그린어웨이(54)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린어웨이는.요리사,도둑,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가 94년 국내에 비디오로 소개되면서 영화매니어들을 사로잡았다.그로테스크한 재치가 번득이는 기발한 상상력,화려한 색채의 화면으로 자기만의 영화색깔을 보여주는 그는 괴짜감독으로 통한다.올해 칸영화제에서 선보인.필로 북'까지 모두 9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지만 국내극장에서 개봉되는 것은.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이 처음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미스터리영화다.관객이 끊임없이 감독과 지적 게임을 벌여야 한다.실험정신이 가득찬 단편영화들을 만들어온 그린어웨이가“개인적인 영화만들기에서 대중적인 영화만들기로 옮겨가는 기점에 놓인 영화”라고 설명한 작품이지만 웬만한 영화매니어라도 한번 보고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두번,세번은 봐야 그린어웨이의 참맛을 음미할 수 있다.원래 4시간짜리로 찍은 것을 1백8분으로 재편집한 것도 영화읽기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영화의 무대는 1694년 여름 영국 켄트주의 한 귀족 영지.
오만한 귀족들이 집과 재산을 뽐내기 위해 화가를 고용하는게 관례였던 시절이다.허버트부인은 남편이 없는 동안 화가 네빌과 영지를 열두장의 그림에 그려주는 대신 상당한 보수와 화가가 원할때마다 성관계를 갖는다는 특이한 계약을 한다.그런데 어느날 허버트백작이 익사체로 발견되고 그 딸은 네빌의 그림 속에 살인과관련된 암시가 들어있으므로 그가 살인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고 몰아붙인다.허버트백작의 살인범 은 누구며 또 허버트부인의 특이한 계약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그린어웨이는 점잔빼는 귀족들의 시끌시끌한 수다와 아름다운 영국정원의 풍경,또 마이클 니먼의 격정적인 음악을 통해 살인극을둘러싼 중층적인 암시와 음모를 그려간다.
그린어웨이는 몇차례 전시회를 가졌을 정도로 그림에 조예가 깊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은 회화적인 형식미가 뛰어나다.“서구문화,특히 영화는 두가지의 지배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성과 죽음이 그것이다”는 그의 말처럼 이 영화도 성과 죽음을 다루고있다. 말장난.로맨스.간통이 뒤섞인 살인 미스터리같지만 인내심을 갖고 곱씹으면 그 속에 깔려있는 영화와 예술에 대한 은유,귀족과 평민간의 알력등이 읽힌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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