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1997년 한국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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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축구보다야 나은 편이지만 미식(美式)축구도 득점이나 점수차가 크게 나는 경기는 아니다.기껏해야 10점대가 보통이고 크게 벌어지는 경우에도 30점대를 넘어서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그런데도 오래전의 경기이긴 하지 만 미국의 컴버랜드대학이 조지아 텍에 무려 2백20대0으로 패한 적이 있다.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 무대에서 광의의 수출과 수입이 겨룬 결과 수출쪽이 2백20억달러 내외의 차이로 참패할 것으로 예상된다.경상수지 적자가 그만큼 된다는 얘기인데 그야말로 단군 이래의 최대 기록이 될 것이다.
올해 경제가 물가안정 속에서 7%에 가까운 높은 성장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사이에 오히려 불만과 불안감이 확산돼 가는 이유는 바로 경상적자의 대폭확대에 있다고 하겠다.우리 경제의 취약성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내년의 한국경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많은 전문가들은 경쟁력 강화 노력과 해외여건 개선에 힘입어 국제수지 적자가 소폭이나마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또한 달리 큰 충격이 없다면 내년 여름께부터 경기가 바닥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 이기 시작할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그렇게 되면 연간 6% 수준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순탄한 흐름을 방해할 변수가 적어도 세가지 이상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첫째가 대통령선거다.여당후보들의 난립,야권공조의 향배(向背),레임덕 정부의 정책의지와 수행능력등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큰 한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상해볼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여당후보가 확정되고 탈락한 사람들이 탈당.분당등을 통해 정면으로 도전할 때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초강수로 대응하는 경우다.사정(司正)때의 매서운바람이 다시 휘몰아치면 경제가 얼어붙을 위험이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노사관계다.선거의 계절이 되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워지는 것이 노사관계인데 노동법 개정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총파업등 과격한 분규가 계속된다면 생산과 수출의 차질로 경상적자는 다시 기록을 경신할 것이고 경기회 복 또한 지체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對)북한 관계다.이 또한 예측을 불허하는 문제로 관계가 개선되든,악화되든,새로운 돌발사태가 발생하든,우리 경제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몰고 올 것이다.
내년에 정부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이러한 변수들의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경제가 순항(順航)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데 있다.
이와 관련해 한가지 아쉬운 점은 내년도 경제운영에 관한 정부의 방향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신중을 기하는 것도 좋지만 발표가 늦어질수록 국민의 불안감도 더욱 깊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정책당국이 유념해야 할 것은 정책 입안과 수행에서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성장.물가.국제수지 문제에 대해 고루 관심을 가져야지,한가지 문제에만 집착한다거나 과거의잘못을 한꺼번에 고치려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다.평소 방만하게 경제를 운영하던 노태우(盧泰愚)정부는 집권 말기에 가서야 물가라도 잡아보겠다고 긴축정책을 강화한 결과 인플레는 다소 진정됐으나 경제는 완전히 활력을 잃고 마는 결과를 초래했다.
글머리에서 지적한 것처럼 지금 가장 중요한 과제가 경상적자 개선임에는 틀림없으나 이 문제에만 집착해 무리한 목표를 책정하고 밀어붙인다면 그전 정부에서와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업이나 가계의 자발적 협조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행돼야 할 것이다. 내년의 정치일정 때문에 정부나 국민의 마음이 바빠질 수밖에없겠지만 행동만은 느리더라도 한발한발 확실하게 옮겨가는 소의 걸음을 본받는다면 내년 전망이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盧成泰 <한화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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