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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더 빨리 알아내라 … 첩보전쟁 승리는 너의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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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거의 모든 스파이의 역사
제프리 T 리첼슨 지음, 박중서 옮김, 까치, 560쪽, 2만원

“자푸스트칼(미사일 발사).”

일본 홋카이도 북부 와카나이 기지에서 근무하던 미군 감청 반원은 화들짝 놀랐다. 바다 건너 사할린 근해를 비행하던 소련군 수호이-15 전투기 조종사들의 교신 내용을 엿듣다 미사일 발사 순간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이어진 “목표물 파괴 완료”라는 보고. 1983년 9월1일 새벽의 일이다.

‘목표물’은 대한항공 007기. 269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조지 슐츠 국무장관은 이 증거를 들이밀었다. “소련 레이더가 007기를 포착했으며, 소련 조종사가 그 비행기가 여객기임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이를 지상국에 알렸음에도 미사일 발사 명령을 받고 민간 여객기를 떨어뜨렸다. “ 소련은 아무런 변명도, 발뺌도 할 수 없었다. 먼저 아는 사람이 살아남고, 뒤진 사람은 목숨을 내놔야 하는 살벌한 첩보전쟁. 여기에서 참담하게 패배한 것이 소련이 무너진 결정적인 계기는 아닐까.

이 책은 음지에서 양지의 세계를 바꿨던 20세기 첩보 전쟁을 소상하게 다루고 있다. 첩보세계의 눈으로 살펴본 세계사의 이면이다. 이 분야 고전의 하나로 통한다. 지은이는 미국 국가안보 문서보관소의 수석 연구원이다.

지은이가 제시한 극적인 사례. 67년 6일전쟁을 앞두고 이집트 공군기지를 감시한 이스라엘군. 이집트 공군이 새벽에 경계령을 발동하고, 경계가 끝난 7시와 8시 사이에 조종사와 지상요원이 모두 아침식사를 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스라엘은 7시45분에 공격을 개시했다. 419대의 이집트 전투기 중 304대가 부숴졌다. 첩보는 전쟁의 승패는 물론 지역의 정치 지형도, 나아가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는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지금, 국가 단위의 첩보활동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은이는 “첩보기술이 발달해 각국이 서로 상대방을 소상히 파악하게 되면서 한쪽이 일방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없게 된 점”을 들었다. 상대방을 잘 아니까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고, 대신 이를 바탕으로 한 군축협상이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한반도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이다. 원제 『A Century of Spies: Intelligence in the Twentieth Century』.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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