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화>호암아트홀 "아름다운 비행" 28일 개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액션.코미디등 성인영화가 휩쓰는 세밑 극장가.그러나 28일 호암아트홀에서 개봉되는.아름다운 비행'(원제:Fly Away Home.감독 캐럴 발라드)은 가족영화다.
엄마 잃은 소녀가 고아 거위떼와 나란히 날아오르는 장면은 신바람과 코끝 찡한 감동이.ET'의 그 유명한 자전거 비상 장면같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13세 소녀 에이미(.피아노'의애너 파킨)는 고향 뉴질랜드를 떠나 세살때 헤어진 아빠(제프 대니엘스)와 캐나다에서 살게 된다.발명가인 아빠는 딸을 달래주려 무진 애를 쓰지만 마음뿐이고 딸은 친구도 없이 쓸 쓸한 초원을 거닐며 슬픔의 껍질 속으로 자꾸만 기어든다.
이 껍질을 깨주는 것은 아빠도,새 엄마도 아닌 갓 부화한 어미 잃은 새끼거위들이다.거위들은 태어나 처음 본 에이미를 엄마로 여기고 따르며 에이미는 이들을 기르면서 엄마 잃은 슬픔을 잊어간다.그러나 이 만남도 헤어짐을 맞게되니 거위 들이 남쪽나라로 가야 하는 가을이 닥친 것.에이미와 아빠는 대담한 계획을세운다.글라이더를 탄 에이미가 날줄 모르는 거위들을 인도해 겨울 서식지 노스캐롤라이나로 데려간다는 것이다.
외로운 소녀가 거위들의 어미 역할을 하며 슬픔을 벗고 성장한다는 설정은 이야깃감으로 손색이 없지만 그만큼 상투적으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그러나 이 영화는 상투적 인상을 주지 않는다.엄마를 잃고 세상에 토라져버린 13세 소녀의 예민한 심리를무게있게 풀어내면서 화면에 절묘하게 연결시킨 연출 때문이다.
영화는 엄마를 소녀에게서 앗아가는 도입부 교통사고 장면을 울음소리 하나 없이 잔잔한 음악속에 흘려보낼 만큼 섣부른 감정 이입을 호소하지 않는다.대신 소녀의 미세한 감정의 흔들림을 그대로 담아내는 빛의 연출로 승부한다.하루 수십번씩 우울함과 희망을 반복하는 소녀의 마음은 맑음과 흐림이 중첩되는 햇빛의 미세한 표정으로 곧장 전달된다.여기에다 풍부한 시적 상징이 소녀와 관객의 감정 소통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어준다.입술을 굳게 물고 비행기 조종간을 잡은 에이미의 모습은 엄마가 밀어주는 타이어 그네를 즐기던 어린 시절과 연결된다.엄마 품에서 벗어나 홀로 알을 깨고 축축한 몸으로 세상에 나오는 거위 새끼들의 얼굴 역시 파킨의 그것.점차 커가는 거위들이 날갯짓을 배울 때쯤밝아져 있는 파킨의 표 정도 박자가 맞는다.묵직한 연출을 고수하면서도 이런 상징들의 효과적 배합으로 가랑비에 옷섶 젖듯 자연스럽게 관객을 동화시키는 것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다.거위들과비행을 시작한 에이미가 전투기의 추적을 당하고 사냥꾼의 총탄 세례를 받 으며 방송 카메라의 표적이 되는등 할리우드식 모험 스토리로 이어지는 후반부는 조금 호들갑스럽지만 전반부에서 확보된 감동 때문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강찬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