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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승리 주역들은 ‘좌’ 액설로드 -‘우’ 플루프 1등공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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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두 명의 데이비드=오바마 진영엔 두 명의 데이비드가 있다. 수석전략가인 데이비드 액설로드(53·사진左)와 선거운동 총 책임자 데이비드 플루프(41·右)다. 2004년 오바마의 연방 상원의원 선거 때부터 호흡을 맞춘 이들은 오바마 승리의 1등 공신이다. 액설로드가 이슈에 맞는 전략을 짜내면 플루프는 구체화시켜 실행시켰다.


별명이 ‘도끼(ax)’인 액설로드는 오바마의 왼팔 역할을 하면서 선거 전략을 총괄했다.

홍보 전문가인 그는 ‘변화’라는 화두를 오바마에게 제시했다. 또 지난달 마지막 TV 대선토론에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배관공 조’를 화두로 오바마를 공격해 캠프가 위기에 놓이자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을 ‘도끼’로 찍어 지지 선언을 이끌어냈다. 대공황이 터졌던 지난달 29일 30분짜리 대형 광고로 ‘끝내기’를 성공시킨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오바마 연설에서 “그래, 우린 할 수 있어(Yes, we can)”라는 호응 구절도 그의 작품이다.

뉴욕 타임스(NYT)는 액설로드를 “오바마의 친구이자 항상 그의 팔꿈치 안에 있는 가신”이라고 평가했다. 유대인인 액설로드는 특히 흑인 정치인들의 승리 전략 수립에 탁월했다. 시카고 최초의 흑인 시장인 해럴드 워싱턴을 비롯해 디트로이트·클리브랜드·워싱턴DC의 흑인 시장들이 그의 도움을 받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1급 책사 칼 로브에 비견되는 액설로드는 1992년 민주당원의 소개로 오바마와 첫 인연을 맺었다. 액설로드는 줄곧 “오바마가 워싱턴에 가는 길을 도운다면 내 인생 최고의 성취”라고 말해 왔다.

민주당 경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이 ‘국정 경험’을 강조하고 나섰을 때 액설로드는 오바마에게 ‘변화’를 강조하도록 해 선거 구도를 뒤집었다. 지난달 미국에 금융위기가 닥치자 “매케인은 경제 문외한이며 부시 정책의 추종자”라는 인식을 유권자에게 각인시킨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젊은 유권자 공략을 위해 ‘웹 2.0’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선거운동을 제안해 조직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액설로드는 “워싱턴에 가지 않고 시카고에 남겠다”고 밝혔다고 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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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플루프는 23세 때 상원의원 선거 캠페인에 뛰어들었을 정도로 경험이 풍부한 선거 전문가다. 97년 민주당 지도자 중 한 명이던 리처드 게파트 하원의원의 비서실 부책임자를 지냈고, 99년 민주당 의회 선거캠페인 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풀뿌리 조직 결성에 능했던 플루프는 올해 초 민주당 아이오와 코커스 때 당원을 대거 결집시켜 힐러리를 누르고 기선을 제압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또 캠프 내 집행권을 틀어쥐고 내부 불협화음 통제 등 ‘군기반장’ 역할도 수행했다.

◆선거 베테랑들 대활약=2000년 대선 당시 앨 고어 민주당 후보를 돕는 등 86년부터 선거 전문가로 활약해온 스티브 힐더브랜드는 선거전 부책임자로 플루프를 도왔다. 오바마 캠프 대변인으로 활약한 로버트 깁스(37)는 2004년 대선 때 존 케리 민주당 대선후보의 대변인을 지냈다. 그는 매케인 측의 강력한 네거티브 공세에 “점잖게 있으면 루머는 진실이 돼 버린다”며 공세적으로 대응했다. 선거캠프 실무 운영을 책임졌던 베스티 마이어스는 빌 클린턴 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디디 마이어스와 친자매 사이다.

하얏트호텔 체인 창업자의 손녀인 페니 프리츠커(49)는 선거자금 모금과 집행에서 큰 힘이 됐다. 미국판 사이월드인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자인 하버드대 출신 크리스 휴즈(24)는 지난해부터 사이버 공간에서 오바마 자원봉사 조직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오바마 지지 사이트를 통해 200달러 이하 소액 기부자를 200만 명이나 모았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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