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들이 골프를 자제하는 것은 다분히 대외용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요즘 은행들의 경영을 들여다 보면 속 편하게 골프 칠 입장도 아니다. 경영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에 ‘빨간 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한동안 걱정하지 않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다시 의식하기 시작했다. BIS 비율은 은행이 대출·보증 등 위험이 있는 자산에 비해 자기자본을 얼마나 쌓아놓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국제적인 건전성 지표다. 최소 8%는 넘겨야 한다.
고공행진을 하던 국내 은행의 BIS 비율은 금융위기 여파로 최근 뚜렷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의 3분기 BIS 비율은 11.9%였다. 은행권에서는 가장 높지만 전 분기(12.49%)에 비해선 떨어졌다. 순익이 줄어든 반면 경기 악화로 손실 대비용으로 쌓는 충당금이 전 분기에 비해 세 배 이상 늘었기 때문이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 BIS 비율을 얼마나 유지하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분기 국민은행의 BIS는 한 자릿수(9.76%)로 떨어졌다. 물론 돌출 요인이 있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자사주 4조원어치를 매입하기 위해 자기자본을 까먹은 게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주가는 자사주 매입 가격에 비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아직 3분기 BIS를 발표하지 않았다. 하나은행은 키코 관련 거액의 대손충담금을 쌓는 바람에 3분기에 적자를 냈고, 우리은행도 분기 실적에 서브프라임 관련 파생상품 손실을 반영할 예정이다.
은행들이 당장 BIS 비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대출을 줄이거나 후순위채 발행 등으로 자기자본을 늘리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적극 돕겠다던 은행장들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최근 은행들이 쉽게 대출 문을 열지 않는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
비 올 때 우산 빼앗느냐는 비난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4일 은행들의 ‘안면 바꾸기’를 질타했다. 정부의 외채 지급보증을 받아야 할 은행들로선 이 같은 시선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대출 늘리기에 앞서 비상경영이나 자구노력 등 ‘피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하나대투증권 한정태 애널리스트는 “아직 국내 은행의 BIS 비율에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향후 실물경기 침체로 은행들의 이익이 줄어들 것을 시장에선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BIS 비율=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이 정한 은행의 자본 적정성 지표다. 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눠 100을 곱한 수치다. 외환위기 때는 BIS 비율 8%를 기준으로 은행의 생사가 갈렸다. 통상 10%를 넘어야 우량은행으로 본다. 올해부터는 평가 기준을 더 세분화한 신BIS(바젤2)가 도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