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家閥>3.부토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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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47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신생 독립국가를 이룬 파키스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은.부토'다.
70년대 이후 파키스탄 정국은 부토 일가의 부침과 궤를 같이한다.71년 대통령에 취임해 77년 실각하기까지 줄 피가르 알리 부토는 파키스탄의 반복되는 유혈정쟁(政爭)의 주역이었다.아버지 알리를 이어 88년 총리에 오른 베나지르 부토 역시 파키스탄판.철의 여인'으로 불리면서 두번이나 권력의 정상에 섰다.
알리 부토는 28년 파키스탄 남부 신드지방에서 귀족이자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그는 신생 독립국의 최고 엘리트다운 뛰어난 화술과.감',그리고 화려한 술수로 끊임없는 정쟁의 소용돌이속에서 승승장구했다.30세에 상무장관을 지냈고 그후 외무장관과야당 당수를 거친뒤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떨어져나가던 격동의 시기에 43세의 나이로 권력의 최정점에 올라섰다.
인도와의 전쟁과 동파키스탄문제,그리고 야당의 끊임없는 반대 시위로 혼란을 거듭하던 알리 부토정권은 77년 지아 울 하크 장군이 이끄는 군부쿠데타에 의해 무너졌다.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옛 소련 공산당서기장 등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그는 79년 교수형으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했다. 지리멸렬할 듯하던 부토 일가의 역사는 알리의 장녀인 베나지르 부토에 의해 다시 쓰인다.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등장한 베나지르 부토는 파키스탄을 지배하던 군부에 맞서 민주화의 기수로 부상한다.
2년간의 영국 망명생활을 마친뒤 86년 귀국한 베나지르는 자신의 아버지를 처형대에 올린 지아 울 하크의 최대 정적으로 등장,한차례 투옥을 경험한뒤 88년 총선에서 승리,총리직에 오른다. 그녀의 나이 35세.아버지가 대통령직에 올랐던 나이(43세)보다 8년이 더 빠르다.그녀의 정치적 배경은 아버지 알리가창립한 파키스탄인민당(PPP).명문대인 옥스퍼드와 하버드에서 수학한 점,화려한 제스처와 대중앞에서 강해지는.순발 력 있는'웅변도 부녀가 공유한 특징이다.
전통적 남성지배사회에서 최초의 여성총리로 등장한 베나지르 부토는 그러나 90년 독직과 부정부패로 실각하고 만다.
베나지르가 다시 등장한 것은 93년.대통령과 전임총리 사이의권력갈등을 교묘히 파고들어간 것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차례에 걸친 정상 등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올해 11월 다시 실각했다.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어머니 누스라트 부토 여사와 불화를 빚는 한편 PPP에서 최대 정적으로 떠올랐던 동생 무르타자 부토가 경찰의 총격으로 살해되면서 배 후에 그녀가개입돼 있지 않느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막내 샤나와즈가 85년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데 이어 무르타자가 사망함으로써 부토일가를 이어갈 남성 혈육은 베나지르 부토의 여덟살난 아들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베나지르의 실각으로 부토 일가는 예전의 영화를 되찾을수 없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알리의 최초 민간정부 출범,군부에 맞선 베나지르의 민정 구성등 파키스탄의 민주화에 큰 몫을한 부토 일가는 결국 혈연정치에 따른 부작용을 이겨내지 못하고조락(凋落)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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