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이코노믹스>과소비의 두 얼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서울강남구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앞 네거리에.과소비는 졸부들의 한풀이'라는 현수막이 나붙었다.지난주 한 시민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선“지금의 경제난은 천민적 과소비 때문”이란 대학교수들의질책이 따가웠다고 한다..소비가 미덕'이기는커녕 .소비가 악덕'인 시대다.생산된 제품은 반드시 소비돼야 한다.그래야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하다.생산적 소비와 소비적 생산은 동전의 앞뒤이자 닭과 달걀의 관계다.정상적 욕구충족을 넘는 소비가 항상 말썽이다. 남 앞에서 으스대거나.체'하려는 과시욕구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애덤 스미스도 일찍이“자기만이 가진 것을 자랑하려는 성향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고 꼬집었다.
.과시적 소비'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은 1834년 캐나다의 경제학자 존 래이였다..실익을 따지지 않고 그저 남보다 우월하게 보이기 위한 소비'로 그는 정의했다.소득수준만이 아니고 사회적.문화적 태도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189 9년 노르웨이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여가계급의 상징으로 이를 이론화했다..정상적인 소비에의 만족을 넘어 남에게 자신의 계급이나 성취를 나타내려는 소비'로 규정지었다..베블런 효과'라는 말도 생겨났다.물건이 귀하고 값이 비쌀수록 더 잘 팔린다.값이 내릴 경우 질이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거나.너도 나도 갖게될 것'으로 우려,더이상 구매를 안한다.
.편승'효과는 그 못지않게 고약하다.도무지 형편이 안되는 소득계층들도.축'에 끼이기 위해 덩달아 분수에 넘는 소비를 일삼는다.이 두 효과의 상승작용에 따른 무분별한 소비가 과소비의 전형적인 추한 얼굴이다.
소비자보호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성인 두명중 한명은주위 사람들이 과소비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충동적 과시형 소비행태는 고소득층과 20대가 가장 심하다고 한다.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소비수준도 따라서 올라 간다.수입이 개방되고 해외여행이 잦아지면서 세계 유명제품들을 접할 기회는 많아지고,좀더 나은 제품에 대한 소비욕구도 그만큼 커진다.글로벌화 물결은 소비에서도 국경을 허물고 있다..글로벌 10대'.
글로벌 소비자'의 시대다.여유계층들은 일본이나 한국.말레이시아.중국등 나라를 가리지 않고 세계최고를 다투어 찾는다.국산품을맹목적으로 애용하는 소비자 애국주의는 갈수록 흐려진다.
이들을.글로벌 중산층'으로도 부른다.나이키의 신제품 에어맥스는 도쿄에서 최고 1천3백달러(1백여만원)에 팔린다.1백만원짜리 운동화라니 눈이 뒤집어지지만 그래도 들어오기가 무섭게 팔린다고 한다.이 글로벌 소비가 한국 과소비의 또하나 의 얼굴이다. 루이뷔통의 세계 전체 생산량중 절반은 일본에서 팔린다.얼마전 방한한 필라 회장은 휠라제품이 본고장 이탈리아보다 한국에서더 많이 팔린다며 한국민들에게“생큐”를 연발했다.해외의 생산거점 확보등 생산의 세계화와 함께 소비의 세계화도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우리의 경우 생산쪽은 거북이인데 반해 소비쪽은 날쌘 토끼다..글로벌화'의 불균형 게임이다.사치품 소비에 대한 세무조사가 만능일 수 없고,이제 와서 글로벌화를 막지도,막을 수도없다.국내의 생산구조와 제품수준을 끌어올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걸린다.우리의 소비재 수입은 전체 수입의 대충 13%다.경제의글로벌화가 진전될수록 소비재 수입도 갈수록 늘어난다.오늘의 과소비는 글로벌화가 우리경제에 씌운 거북스런.멍에'의 하나다.
(경제담당국장) 변상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