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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상처투성이 노동法 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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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5월 발족한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위원장 玄勝鍾)가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복수노조등 노동법 개정의 핵심 쟁점들에 대해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가장 큰이유는 노사 양측의 지나친 이기심 때문이었다.
노사 모두 이해관계의 마지노선을 그어놓고“법을 고치지 못하면못했지 이것만은 안된다”는 자세로 버티는데는 내로라하는 각계 원로와 전문가들인 20명의 노개위 공익위원들도 두손을 바짝 들고 말았다.
약 7개월간 이를 지켜본 배무기(裵茂基)상임위원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란 뜻의.미션 임파서블'이란 말로 노사 합의를 지칭했을 정도다.노개위에서의 논의는 의결기관이 아닌 대통령 자문기구로서의 활동이었으니 그렇다 치자.문제는 노개위 논의를 이어받은 정부의 노동법 개정작업 또한 노사 양측의 대리전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단적으로 지적하면 재정경제원과 통상산업부는 재계쪽의 논리를,노동부는 노동계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이수성(李壽成)총리가 위원장인 노사관계개혁추진위원회(노개추)실무위원들간의 논의가 각자의 입장을 알리는 선전포고였다면 1일열린 관계부처장관회의에 이은 관계부처별 접촉은 전리품을 하나라도 더 건지려는 각축장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논의과정이 이러했으니 정부부처가 개정작업에 착수한지 약 20일만에 모습을 드러낸 개정안의 모습이.여기서 조금,저기서 조금오려 붙인 상처투성이의 몰골'을 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이아니겠는가.노사 양측의 입장과 이를 대변하는 관계부처의 의견을절충하는 선에서 개정안을 마련하다 보니 그 어느 곳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생아가 탄생한 셈이다.
보편적인 국제기준과 법의 기본원리등 법 개정의 준칙은 재계의목소리와 노동계의 으름장 때문에 찾아보기조차 힘든 지경이었다.
예컨대 통산부와 노동부의 대립으로 막판까지 합의가 안된 대체근로의 허용범위는 李총리가 사내및 사외근로자.하도급까지의 스펙트럼을 그려놓고 그중 하나를 골랐다는 후문이며,교원의 단결권 조항은 이마저 빠질 경우 노동계 주장과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노동부의 우려로 뒤늦게 추가됐다는 얘기가 유력하게 나돌고 있다. 국가경쟁력 강화와 근로자 삶의 질 향상이라는 노동법 개정의양대목표가 노사 양측을 의식한 절충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입법은 타협이라는 말이 있지만 새로 마련되는 노동법 만큼은 흥정이 아닌 원칙과 기준에 맞춰 탄생하길 국회처리과정에서나마 기대를 걸어 본다.
김진원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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