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로가는길>속리산 탈골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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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암자명이 좀 으스스한 탈골암(脫骨庵)은 법주사 오른편 계곡 위에 있다.
낙엽이 지고 난 후여서 그런지 흐르는 물소리가 더 차갑다.
숲은 휑하니 비어지고 비로소 산죽의 푸르름이 드러나는 시절이라고나 할까.
탈골암의 초창(初創)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연화대석(蓮花臺石)과 주춧돌들이남아 있고,삼국유사에 탈골암의 설화가 수록된 것으로 보아 암자의 역사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암자명의 유래는 이러하다.
신라의 탈해왕(脫解王)때 경주 김씨의 시조인 알지(閼智)가 닭의 머리를 한 자신의 용모를 한탄하던 중 속리산의 한 암자에만병통치의 약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와 물을 마셨는데,그 순간 닭의 머리가 사라지고 사람의 머리로 바뀌었 다고 해서 그암자를 탈골암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마침 공양시간이 돼 한 비구니 스님의 안내를 받아 식당으로 내려가본다.암자의 인심치고는 후한 편이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이 아주 정갈하다.
어떤 큰 절의 공양각은 마치 저잣거리의.역전식당'같고,음식은짐승이나 먹는 사료같은 느낌이 들어.수행하느라고 먹는 것에 소홀하나 보다'하고 자위하고 마는데,탈골암의 음식에는 정성이 가득 들어있는 것이다.
내놓는 음식을 보면 그 절 스님들의 수행력이 어떤지를 알 수있지 않을까.
풋풋한 배추 속잎과 잘 절여진 깻잎,그리고 바르게 썬 무와 깊은 맛의 된장국등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더구나 절밥은 돌아서면 꺼진다고 자꾸 더 먹으라고 권하는 영수(榮修)노스님을 뵈니 보살행이 무언지 절로 가슴에 와 닿는다. “아내를 사랑하듯,자식을 사랑하듯 사람들을 믿어보세요.그러면 믿는 만큼 자기한테 사랑이 되돌아오니까요.” 암자 불사를 하는데 누구에게도 일부러 부탁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냥 기도를 하거나 사람들이 찾아오면 인연대로 쉬다 가게 했을 뿐인데 자연스럽게 불사가 이루어지더라는게 영수 노스님의 고백이다. “몇십년 전에는 암자가 쓰러져가고 있었지요.그때는 대처승이 살았는데 쇠똥과 잡초 무더기 뿐이었어요.지금까지 쇠똥 치우고 잡초 뽑는 일밖에 달리 한 일이 없어요.젊은 스님들이 흙 져나르고 리어카 끄는등 힘든 일을 다했지요.” 부처님 믿는사람은 공밥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영수스님의 얘기에 비로소 수행의 의미가 되새겨진다.
몇십년동안 이 늙은이는 쇠똥 치우고 잡초라도 뽑으며 밥을 먹었는데 당신은 공밥만 먹고 말거냐는 화두같은 얘기인 것이다.
그렇다.닭머리가 사람 머리로 바뀌는 것도 탈골이요,쇠똥 치우고 잡초 뽑아 새로워진 암자도 탈골이요,말로만 법문을 하는게 아니라 보살행을 보이는게 탈골이 아닐까.
※문장대 가는 길가의 첫 이정표 지점에서 북쪽으로 8백쯤에 있다. 글:정찬주〈소설가〉 사진:김홍희〈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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