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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권 위축될라" 긴급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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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공판 중심주의 강화 등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논의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기 위해 27일 수도권 지역 검사장회의가 열린 가운데 대검찰청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복도를 삼삼오오 지나가고 있다. [연합]

27일 오전 9시 수도권 지검장 9명과 대검 간부 등 검사장급 17명이 대검 8층 소회의실에 속속 모였다. 지난 4일 김종빈 검찰총장 취임 이후 처음 검찰 수뇌부가 모인 것이다.

이날 회의는 최근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형사재판 개혁 방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소집됐다. 참석자들에게 하루 전날 급하게 통보됐다.

사개추위는 피고인이 재판에서 검사의 신문조서 내용을 부인할 경우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게 하고 재판에서 검사의 피고인 신문을 폐지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김 총장은 이날 출근길에 "매일 전쟁하는 것 같다. 사개추위 방안대로 간다면 현행 형사소송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말로 심각성을 표시했다.

그는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대해 왜 이제야 내가 그 심각성을 알 수 있게 했느냐"며 검찰 간부들을 강하게 질타했다고 한다.

사개추위는 30일 형사소송법 등 관련법 개정안을 마련, 다음달 16일 장관급 전체회의에서 확정할 예정이다. 개정안이 올 정기국회를 통과하면 2007년 시행된다. 사개추위는 법조 일원화, 로스쿨 도입 등 사법개혁을 정부 차원에서 논의하기 위해 지난 1월 발족된 대통령 자문기구로 한승헌 변호사와 이해찬 국무총리가 공동 위원장이다.

◆ "우리 문화에 맞지 않는 제도"=회의는 참석자들이 난상토론을 벌이는 바람에 예정된 1시간을 넘겨 2시간30분 동안 계속됐다.

A검사장은 "미국식이든 독일식이든 본래 방식대로 가야지 문화가 다른 제도들을 억지로 끼워 맞춰서는 안 된다"며 사개추위 방안을 공격했다. B검사장은 "사개추위에 실무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많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검찰의 위기감은 공직부패수사처 설립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무부 감찰관실의 검사 비위 감찰 등과 맞물리면서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과잉 대응할 경우 청와대에 대한 반발로 비치지 않을까 수위 조절에 애쓰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형사재판 개혁 논의 과정에서 내놓고 법원과 다른 시각을 표출했던 것과 비교된다.

검찰도 이를 의식한 듯 "그간 사개추위 논의 내용을 일선 검사장들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이번 기회에 쟁점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조심스럽게 공식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지검 단위로 대안을 마련한 뒤 이번 주 중 전국 검사장 회의를 열어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 검찰 입지 축소 불가피=미국식 공판중심주의가 확대되면 검사와 피고인이 법정에서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되고 검찰의 입지는 축소가 불가피하다. 조서(調書) 중심으로 진행되는 재판 대신 검사.피고인.변호인이 법정에서 치열하게 공방을 벌여 유무죄를 가리게 된다.

또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 능력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을 경우 검찰 조서는 효력이 없어진다. 이럴 경우 검찰의 수사가 갖는 힘은 크게 약해지고, 법정에서 공소유지에 급급하는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검사들 사이에 팽배하다.

시민들이 배심원 등으로 재판에 참여하는 참심제.배심제 도입에 대해서도 검찰은 부정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민의 사법 참여 확대라는 대명제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현행 제도와 배심제.참심제를 혼용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인권보호와 사법정의에 어울리는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개추위 관계자는 "피고인의 인권과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자는 것이지 검찰 수사권을 폐지하자는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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