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NBA에서 돌아온 미완의 공룡, 한국서는 통할까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24일 전북 전주에서 벌어진 프로농구 시범경기. KCC 하승진이 KTF 이은호의 수비를 피해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작은 사진은 NBA 시절의 하승진.

2004년 미국 프로농구(NBA)에 등장했던 한국산 공룡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 프로농구(KBL) KCC의 신인 센터 하승진(23·2m22㎝). 모국에선 통할 수 있을까. 살이 빠지고 좀 더 날렵해진 하승진이 한국 농구의 지각변동을 예고했다는데, 정말인가?

하승진은 2004년 NBA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가 선택한 선수다. 그는 세계 최고의 농구 무대를 밟은 첫 한국인 선수다. 하승진은 지금 KBL 최장신 선수일 뿐만 아니라 국내 프로농구 사상 가장 키가 큰 선수다. 그가 NBA에 남았다면 올 시즌 야오밍(휴스턴 로케츠·2m29㎝) 다음으로 큰 선수가 됐을 것이다.

하승진은 미국에서의 지지부진한 성적을 뒤로 하고 지난해 한국에 돌아왔다. 포틀랜드에서 두 시즌에 걸쳐 46경기에 출전, 경기당 7분 남짓 뛰었고 평균 득점은 2점 이하였다. 2006년 여름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됐지만 2006~2007 시즌을 앞두고 방출됐다.

하승진은 올해 1월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KCC에 지명됐다. 그리고 정규 시즌 경기에서 뛰기도 전에 한국 농구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KBL은 이번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 규정(선수당 2m8㎝ 이하·두 선수 합계 4m 이하)을 없앴다. 각 팀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하승진을 막아낼 만한 센터를 찾느라 분주했다.

하승진은 KCC의 보물이다. 2007~2008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치고도 삼성에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덜미를 잡힌 KCC는 하승진을 영입해 대들보인 서장훈(34·2m7㎝)과 짝을 맞췄다. 2m가 넘는 미카 브랜드, 브라이언 하퍼와 계약하며 장신 군단을 만들었다.

상대 팀 입장에서 KCC와의 경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승진이 버티는 KCC의 골 밑을 상대 팀 가드들이 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KCC가 장신 팀이므로 속공으로 공략한다는 게 공식이지만 쉽지 않다. 속공이란 수비 리바운드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KCC의 높이에 눌려 리바운드 다툼 자체가 버거울 것이다.

허재 감독은 하승진의 성실함을 칭찬하며 “몸싸움도 적극적이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자세가 잘돼 있다”고 덧붙였다.

하승진과 KCC의 골 밑을 책임질 서장훈은 “주목받는 선수지만 팀에서 너무 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조진호 KCC 홍보팀장은 “NBA에서 뛰고 왔지만 뻐기지 않는다”고 말했고, 미국인 어시스턴트 코치 캘빈 올덤은 “영어도 제법 한다. 은어랑 사투리도 쓸 줄 알더라”고 웃었다.

팀에서는 굳은 일을 도맡는 막내지만 코트에서 하승진에 대한 의존도는 높을 것이다. 농구 림의 높이는 10피트(약 3m5㎝). 하승진이 골 밑에서 공격 위치를 선점하면 그를 막기 어렵다.

올덤은 또 하승진이 수비할 때 종전에는 평행으로만 움직였지만 지금은 모든 방향으로 활발하게 발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승진의 민첩성과 체력에 놀랐다. 지난 한 달 동안 엄청난 발전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원래 체격이 큰 선수들은 발전 속도가 작은 선수보다 느리게 마련이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더 나아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KCC는 하승진을 애지중지한다. 그를 위해 팀 숙소의 문을 크게 고치고 특별 침대와 욕조도 만들었다. 지난달 27일 훈련 중 경미한 부상을 당하자마자 병원으로 후송했다. 28일 오전 훈련은 하승진 없이 진행됐다. 허 감독은 “하승진이 없으니 뭘 제대로 못하겠다”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달 20일 모비스와의 첫 시범경기 때 하승진의 부상을 염려해 벤치에 앉혀 두었던 허 감독이다.

허 감독은 또 “하승진 본인도 다치고 나서 짜증을 내더라”고 말했다. 개막을 불과 5일 앞두고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한 상태에서 예기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기 때문이다. 시즌을 준비하며 무려 25㎏을 감량했고 지난달 24일 KTF와의 시범경기에서 18분 동안 13득점·8리바운드·3블록의 활약을 보였기에 아쉬움은 더했을 것이다.

하승진은 시즌이 시작도 되기 전에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스러운 눈치다. 몰려드는 인터뷰 요청도 극구 사양하고 있다. 이런 행동은 사실 NBA 물을 먹어 본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다. KCC 정찬영 사무국장은 “하승진이 인터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인터뷰를 해도 그의 짧은 대답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단의 태도도 프로답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북미 스포츠 구단은 홍보 부서에 선수들과 코치들의 ‘미디어 트레이닝’을 담당하는 직원을 배치하거나 외부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를 하는 법 등에 대해 교육한다. 이들은 간판 선수들이 구단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그들을 자주 언론에 노출시키려 한다.

인터뷰가 잦고 부담스러워 피하는 것은 센터가 밀착 수비가 싫고 자유투에 자신이 없어서 경기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허 감독은 하승진의 실전 경험 부족을 걱정했다. NBA에서도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축이 된 경기를 많이 뛰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허 감독은 또 “한국 농구도 수준이 높아졌다. 그런 점이 부담된다”고 덧붙였다.

허 감독은 젊은 선수에게 더 짐을 지우기 싫었는지 올 시즌 하승진의 성적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려 들지 않았다. 다만 그는 “하승진이 개인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시즌이 되었으면 한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나가면 내년에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 부상 없이 올 시즌을 마치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지호 기자 jeeho@joongang.co.kr

[중앙SUNDAY]

▶ 강만수 "당신들은 이 지경까지 어떤 경고했나"

▶ "경제 어려워 교회 헌금까지 줄였다" 양심고백 하기도

▶ "사람들 악만 남은 것 같다…각박해져서 무섭다

▶ "나라 망했는데 호화 파티 극성이라고…"

▶ 1조9000억 달러로 쌓은 新만리장성…미국도 쩔쩔

▶ "한국 최고의 밤 명소"…나이트클럽 수출 1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