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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내 北에 큰 변화 … 중국군 진주엔 주민 거센 저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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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14면

-왜 지금 연대를 만들었나.
“4년 전 내가 탈북했을 때만 해도 김정일 체제가 10년 이상 갈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3~5년 안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초조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없는 주머니를 털어 출발했다. 제대로 된 비정부기구(NGO)로 활동해야겠다는 각오다.”

탈북자들의 싱크탱크 ‘NK지식인연대’ 현인애 대표

-김정일 위원장 중병설 이후 급변 사태 얘기도 나온다.
“김정일이 죽어도 북한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의 충성파들이 어떻게든 안정시킬 것으로 본다. 주민들도 크게 동요하기보다는 자기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급변사태가 나면 친중(親中) 정권이 등장할 것이란 시나리오는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중국 물건이 북한 내 유통 물품의 80%나 되지만 정치적으론 다르다. 김정일 이후에 들어설 권력이 은밀하게 중국의 지원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군대 진주 같은 노골적 행위는 절대 할 수가 없다. ‘우리 명줄은 우리가 쥔다’는 생각이 북한 사람들의 골수에 박혀 있다. 누가 진주하든 북한 사람들에겐 큰 충격이고, 거센 반발로 이어질 것이다. 북한 지도부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중국에 기댄 권력 유지는 새 지도부가 최후의 수단으로나 생각할 수 있는 카드다.”

-북한 내 지식인 사회의 내부 개혁 요구는 없나.
“왜 없겠나. 모이면 ‘이대로는 살 구멍이 안 보인다. 우리도 열어야 한다’고 수군댄다. ‘김정일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말만 안 하면 보위부로 끌려가진 않는다. 그렇다고 지식인들이 북한 정권에 맞서거나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지식인이라 해도 외부 세계를 잘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나서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서울 북한대학원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NK 지식인 연대’ 창립식 및 세미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만나봤나.
“황 선생님이 총장일 때 김일성대 철학부를 다녔다. 이번에 모임을 결성하면서 인사를 드렸는데, 황 선생이 확립한 주체사상-인간중심철학론을 깊게 믿고 계시더라.”

-잘 알겠다. 그런데 ‘지식인 연대’라는 이름은 폐쇄적인 인상을 준다.
“한국에 온 탈북자들이 ‘북한에서도 잘 살더니 여기서도 특별히 군다’고 오해할까 조심스럽기도 하다. 남한 사회 주민은 대부분 지식인이지만 북한이나 탈북자 사회에서 지식인은 소수다. 탈북자 1만5000명 가운데 6% 정도만 대졸 이상 학력을 가졌거나 전문직으로 활동했다. 그런 만큼 우리 탈북 지식인들이 그냥 있어선 안 되겠다는 의지가 모였다.”

-어떤 사람들이 모였나.
“북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직에 종사한 사람들이다. 평양국립교향악단에서 수석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 2001년 탈북한 김철웅씨도 참가했다. 북한 공산대학 공대 교수 출신인 김흥광씨는 모임 결성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북한 개혁방송’ 대표 김승철씨, 자유아시아방송(RFA) 기자 한영진씨,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김광진씨도 참여했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나.
“우리들은 북한 사람들이 수십 년간 못 본 세계를 보고 있다. 북한에서 산 경험이 있고, 남한의 것도 배우고 있다. 그런 것을 종합해 남북 주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통일이 되도록 정책 제언을 하고 실상을 양쪽에 알리는 일을 할 것이다. 북한 정보와 분석을 담은 계간지 ‘북한 사회’를 펴내고, 정기적인 학술대회도 열 계획이다.”

-어떤 통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남한에선 통일이 되면 북한에 퍼줄 것이라며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김정일 와병설 이후 나오는 통일 얘기를 보면 북한 주민을 배려하는 것이 없다. 솔직히 탈북자들의 내면은 아직까진 북한 사람에 가깝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통일이 되면 순진한 북한 사람들만 당하게 생겼다’고 걱정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남한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통일이 되면 통일독일 이상의 심각한 갈등이 생길 것이라고 느꼈다. 전문직 출신들이 남한 사회에 정착하기는 수월한 편이지만 다른 탈북자들은 정말 힘겹게 살고 있다. ‘우리가 한국 사회에 기여한 게 뭐 있느냐. 이렇게 돌봐주는 것만도 과분하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건가.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김정일 밑에서 주체사상이나 믿고 갇혀 살았기 때문이지, 능력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탈북자들로 인해 남한 내 북한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흐려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은 순박하면서도 강하다. 기회만 주어지면 해낼 수 있다. 자본주의적 경쟁 심리도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다. 남한도 1960, 70년대에 기술을 배워서 발전하지 않았는가.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일어서게 한 다음 점진적 통일을 해야 한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할 것 같나.
“북한 지도부도 ‘열어야 산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배층은 중국 모델을 선호한다. 개혁·개방 과정에서 간부 청산작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병폐에 대해서도 실감하고 있다. 이미 북한의 도시민들은 대부분 장사로 먹고 산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하다.”

-북한을 왜 탈출했나.
“남편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뒤, 아이들도 가족 수용소로 데려간다고 통보가 왔다. 두 아들이 먼저 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했고, 이어 나도 합류했다.”

-남편의 생사는.
“총살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치범 수용소는 가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에 어떤 소식이라도 내겐 의미가 없다. 수용소를 탈출했다는 사람들은 다 가족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이다.”

-남한에는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도 있다.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얘기하면 ‘자기들이 탈출한 곳이라서 과장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우리도 우리 고향이 좋은 곳으로 묘사되는 게 좋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곳에 온 뒤 남한 사회가 알아야 할 것에 눈을 감으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두운 진실도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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