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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81>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6호 16면

들어가면서 퀴즈. 지난해 한국프로야구 홈런왕은?

右동주와 左재현, 그리고 잊어선 안 될 또 한 명

똑, 딱. 똑, 딱. 똑, 딱! 3초 안에 생각해 내지 못한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인사이드’의 생각에는 ‘일반적인’ 야구팬이라면 3초 안에 그의 이름을 떠올리기 어렵다. 아직도 ‘누구더라?’고 생각하고 있는 당신께.

한국시리즈 두 팀의 간판타자 김동주(두산)와 김재현(SK)의 활약을 보면서 그를 떠올리길 권해 본다. 그들 셋은 동기이면서 대한민국 야구를 대표하는 간판타자다. 누구? 심정수(삼성)다. 심정수는 지난해 유일하게 홈런 30개를 넘긴 선수였다(31개). 타점(101개)도 혼자 세 자리를 기록했다. 그 심정수는 3초 동안 지난해 홈런왕이었다는 사실을 쉽게 떠올리지 못할 만큼 잊혀졌다. 활약이 없었던 탓이다. 그는 올해 22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왼쪽 무릎 수술을 받은 게 6월 초. 다섯 번째 수술이었다. 그러고는 재활을 위해 사라졌다.

아련한 시간이지만 생생한 기억을 더듬는다. 18년 전 이맘때. 1990년이다. 그해 가을 서울시 고교야구 가을리그다. 당시 고교야구 가을리그에는 이듬해 고등학교에 진학 예정인 중학교 3학년 선수가 출전할 수 있었다. 그래도 말이 출전이지 주전으로 뛰는 건 언감생심. 가끔 대타로 나오거나 원포인트 릴리프로 마운드에 오르거나 했다.

그런데 그때 주전으로 그라운드에 섰던 ‘수퍼 중학생’들이 있었다. 배명중 김동주. 신일중 김재현, 그리고 청원중 심정수. 이들은 형들과 당당히 기량을 겨룰 만큼 대단했다. 그들이 타석에 설 때마다 “앞으로 뭔가 이뤄낼 재목들이다”는 말이 따라다녔다. 주위의 평가대로였다. 셋은 프로야구를 주름잡는 타자가 됐다. 이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선의의 경쟁이 펼쳐졌다.

혼자 대학에 간 김동주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국가대표 4번 타자다. 아마추어 때도, 프로가 출전하는 올림픽·WBC에서 김동주는 타선의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다. 화려함에 있어서는 김재현이다. 그는 프로 첫해 20홈런-20도루를 기록하며 LG를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14년 뒤인 지난해 SK에서 한국시리즈 MVP가 돼 건재를 확인했다. 그리고 심정수. 그는 95년 OB를 시작으로 2003, 2004 현대, 2005 삼성 등 챔피언 팀의 주포였다. 통산 328개의 홈런을 때려 장종훈(340)-양준혁(339)에 이어 역대 홈런 3위다. 양준혁이 먼저 장종훈을 따라잡겠지만, 그 뒤에는 당분간 심정수의 시대다. 단 더 뛸 수 있다면.

베이징 올림픽에서 김동주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한국시리즈에서 김재현이 홈런을 펑펑 날릴 때 심정수는 지루하고 고독한 재활에 매달렸다. 그는 올해 프로야구 최고액 연봉자(7억5000만원)지만 보여준 게 없다. 삼성은 올해 박석민-최형우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내년 심정수에겐 타순도, 자리도 없다. 그 경쟁에서 이기려면 와신상담밖에 없다. 연봉? 그건 그에게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한국시리즈에서 펼쳐진 김동주와 김재현의 또 한 편의 아름다운 경쟁을 보면서 외진 객석 한 켠의 심정수를 떠올렸다. 잠시 잊혀진 홈런왕, 그러나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그가 또 한 번 일어나 준다면, 그래서 수퍼 중학생 세 명의 끝나지 않은 라이벌 대결에서 또 한 편의 드라마를 써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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