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나다>수벽치기 전수자 육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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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몸짓부터 다르다.”일본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만 봐도 한국인을 금방 구별해낸다.일본인이 일직선으로 걷는데 비해 한국인은 좌우로 흔들며 걷는다는것.몸짓에도 정말 국적이 있는 걸까.이 물음에 “ 그렇다”고 외치는 인물이 있다.
육태안(43).그의 공식 직함은 전통무예 수벽치기 전수자.그가 수벽치기를 만난 것은 87년.무형문화재.택견'의 기능보유자인 신한승씨를 만나“내가 수벽치기의 기틀을 마련했으니 자네가 더 발전시켜 달라”는 후계 청탁을 받고나서부터다.
이전까지 그는 무술이라면 안해 본게 없지만 어디에도 정착하지못했다.가장 일찍 시작했던 태권도는 너무 직선적이고 공격적이었다. 공인 8단에 이르는 합기도는 여러 무술의 핵심을 편집해놓은 만큼 기능적으로 우수했지만 싸움을 위한 것이었다.72년 고려대 임학과에 입학하면서 그는 정신이 깃들인 새로운 무술과 고수를 찾아 전국을 헤맸다.그중에서도 특히 전통무예에 관심이 쏠렸다.2학년때는 산중무술인 기천문(氣天門)을 만나 열광하기도 했다. 78년 교수가 되라는 부모의 뜻을 받들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여전히 공부는 뒷전이었다.오히려 증세가 더 심해져 원한에 사무친 무협영화의 주인공처럼 계룡산에 들어가 무예연마에 돌입했다.이 지옥훈련은 6개월만에 영양실조로 끝낼 수밖에 없었으나 그는 여기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수도로 철근을 자르고 열명의 치한을 한꺼번에 물리치고 싶어하는 열망은 누구에게나 다 있어요.최강자,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그러나 끝내 인간은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순 없어요.” 그가 수벽치기로 무술 편력에 종지부를 찍은 것도 이런 깨우침 때문이었다.수벽치기는.고려사'에 수박(手搏),.조선왕조실록'에 수박.수벽(手癖)등의 용어로 전해져 오는 가장 오랜된 전통무예.“.살법'(殺法)이 아니고 .활법'(活法)의 무예라는 점에 매료됐어요..심대'(신체적 힘)와 .줏대'(정신적 평정심을 유지하는 힘)의 조화를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관절이 상할 정도로바위에 대고 수도를 연마한다든지 사무라이식의 편집증적 정신집중을 모두 금합니다.” 그는 수벽치기의 원리가 조화를 중시하는 전통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87년부터 중앙문화센터 강좌를 통해 수벽치기를 보급해온 육씨는 이달초 서울가회동에 대지1백여평의 한옥을 얻어 독립했다.오늘 개관식을 갖는 이 도장에는 현 재 90여명의 수련생이 있다.그중 80%는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는 부드러운 동작에 매력을 느낀 30,40대.그중에염귀영(30)씨는 아주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다 그만두고 아예 육씨의 제자로 들어온 인물로 지금까지 배출된20여명.사범'의 막내다.그러나 육씨는 염씨같은 .고수'들을 배출하는 것보다 일반인들이 수벽치기를 생활속에 활용하도록 만드는게 꿈이다.그래서 수벽치기 동작을 쉽게 재구성한 수벽체조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고,특히 몸짓이 많은 공연예술인들에게 오래전부터 우리 몸짓을 가르치고 있다.어쩌면 가장.비과학적인' 편력의 소유자인 육씨.그는 말한다.“무예는 가장 과학적인 몸의 움직임을 찾는 생활일 뿐”이라고.
□남재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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