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맛이야기>루이13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위(魏)나라 문제(文帝) 조비(曹丕)는.조군신(詔群臣)'에서“3대 장자는 의복을 알고,5대 장자는 음식을 안다”고 설파했다.필시 상식하는 음식이 부의 상징 혹은 신분이나 출신배경을 나타냄을 이르는 말일 터이다.
로마의 귀족들은 무소의 뿔,하이에나의 눈,하마의 코,백조의 생식기,공작새의 뇌,거위의 혓바닥,인육으로 키운 장어등 민중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음식을 즐겼다.중국 유한계급의 음식호사도 로마의 그것을 뺨쳤다.전설적 부자인 진나라 석숭은 촛불로 지은밥이 아니면 입에 대질 않았고,석숭에 버금가는 부자인 왕제는 수백명의 종들을 동원해 모유로 키운 새끼돼지찜을 대놓고 먹었다.희대의 성인 맹자도 금사웅장(곰발바닥요리)이라면 사족을 못썼다는 얘기하며….
시노다 오사무의.중국음식문화사'에 기록된 덕용(서태후의 비서)의 생생한 증언에 따르면 서태후의 전용열차엔 상설화덕 50개가 장착된 4량의 주방열차가 연결돼 있었고 수행하는 조리사는 일급숙수 50여명,하급숙수가 50여명에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사람은 부지기수였다고 전한다.또 서태후의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열차를 세우고 청돈비압.향령.앵두육.상어지느러미.제비집요리등 1백종의 진귀한 정식요리와 1백종의 근사한 후식을 대령했다고 한다.음식이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음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아니었다.민중의 상차림은 사시사철 3첩이 고작이었던데 비해 사대부의 경우 7첩이나 9첩이 보통이었고,임금님의 경우는 평상시의 수라상이라도 12첩 반상이 기본이었을 뿐더러 3인의 상궁트리오(기미상궁.수라상궁 .천골상궁)가 늘상 임금의 식사 수발을들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은 확인된다.그리고 보신탕의 경우만해도 그렇다.우리는 흔히 보신탕이라면 사철탕.멍멍탕으로 개명된구육갱(개장국)을 연상하기 십상이다.그러나 보신탕의 종류는 실은 신 분에 따라 달랐다.즉 민중들은 삼복이면 허리띠를 끄르고삼삼오오 둘러앉아 구육갱을 보신탕으로 즐겼고,임금님은 우유를 소재로 하는 제호탕과 타락죽을,문무 양반은 닭을 소재로 하는 임자수탕.칠향계탕.삼계탕을 보신탕으로 즐겼다.
얼마전 대한민국의 권문세가 선량들이 음습한 오크통에 수십년간잠을 재운 기백만원대의 브랜디.루이13세'〈사진〉를 들여왔대서민초들의 입방아에 올랐다.그런가 하면 창업이래 수십년동안 4년산.레드'와 8년산.블랙'을 대표상품으로 팔아 온 조니워커사에서 얼빠진 한국인.일본인들을 위해 12년생.블루'를 별도발매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묵히는 술의 전형인 위스키와 브랜디는 8년이면 최고조에 도달한다고 한다.환언하면 그 이상의 미세한 화학적 변화에 대해선 도대체 날개잃은 천사의 입으론 판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19세기 독일의 과학자 게오르그 미 이스너와 루돌프 바그너는 인간의 맛봉오리는 1주일에서 열흘 정도면 마모돼새것으로 교체되며,40대중반 이후면 교체의 주기가 늦어져 미세한 맛 감별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혔다.그렇다면 한국인의 유별나고 고질적인.묵힌 술' 선호는 미각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해석하기 힘들다.혹 음식으로 부와 권력을 과시하던 중세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은 아닐까.
◇필자약력 ▶55년생▶신라호텔.서울가든호텔 레스토랑 마케팅매니저▶現 청주대 호텔경영학과 교수▶한국외식산업硏 부소장 손일락

ADVERTISEMENT
ADVERTISEMENT